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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본 개구리 소년

by 브로콜리

난 황령산 자락에 산다. 도심 속에 있지만 개구리며 도롱뇽, 가재, 메뚜기를 잡으러 산과들을 향하는 게 내 일상이다. 우리 동네 뒷산에는 무서운 개구리가 산다. 이 개구리는 배가 새빨갛고 검은 반점이 뚜렷한 무당 개구리다. 이놈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친다. 동네 뒷산 많은 바위에는 촛농이 묻어 있고 굿을 한 흔적이 있는데 이런 굿판 주위 우물은 항상 무당 개구리 소굴이었다.

‘무당들이 굿하는 곳은 원래 무당 개구리가 있는가?’

난 가끔 혼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난 이런 무당 개구리가 조금 찝찝했지만 산에 다른 개구리가 없어 항상 무당 개구리를 잡아서 집에 키우곤 했다.




요즘 우리 국민학교뿐 아니라 온 나라가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신문이며 뉴스며 개구리 소년을 찾기 위해 어른들과 군인, 경찰아저씨들이 대구에 있는 와룡산이란 곳을 샅샅이 뒤져서 찾고 있었다. 비록 부산이 아닌 대구에 사는 친구들이지만 나와 같은 또래라 걱정도 되고 남 이야기 같지가 않다. 산에 자주 놀러가는 나로선 더욱 이 사건이 무섭게 느껴진다. 요즘 학교에선 선생님께서 아침 조회시간과 오후 종례시간에 항상 우리에게 주의를 주신다.

“어디 갈 때는 어른들과 같이 다니세요. 어린 친구들끼린 멀리 가지 말고 특히 산이나 외진 곳에는 어른들 없이 놀러가지 마세요.”

항상 산이나 들로 외진곳을 놀러 다니던 나로선 조금 무서운 요즘이다. 덕분에 5시가 되기 전에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 학교를 마치고 학교 건물을 나와 운동장 쪽으로 걸어갔다. 사촌이자 친구인 병진이와 뭘 사먹을까 고민하며 교문 근처를 걸을 때였다. 저기 교문 앞에 한 무더기 친구들이 모여 있다. 뭔가를 받으려고 친구들이 한 아저씨 앞에 서있다. 아저씨는 연신 무슨 말인가를 하며 친구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고 있다.

“저거 뭐고? 뭐 파는 거가?”

난 누가 또 뭘 팔러 왔나 싶어 병진이에게 물었다.

“모르겠는데? 뭐지? 함 가보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문을 향해 뛰었다. 한 무더기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 아저씨 앞에 서서 기린처럼 목을 쑥 뺐다.

“자! 친구들 오늘 오후 2시, 4시에 서면 은아극장에서 상영합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공짜로 입장 가능합니다.”

아저씨가 종이를 나눠주며 영화를 홍보한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우린 공짜란다.

“어린이 여러분 개구리 소년 잘 알죠? 요즘 이 친구들이 실종되어서 걱정이 많아요. 여러분들도 어디 갈 때 꼭 조심히 어른들하고 같이 다니세요. 그리고 오늘 상영하는 영화를 잘 보고 우리 친구들도 어떻게 이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지 확인하세요.”

난 영화관에 ‘우뢰매’를 보러 7살 때 가본 후로 가본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개구리 소년’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이게 웬일인가? 거기다 요즘 학교에서 계속 교육하고 있는 어린이 실종과 관련된 내용이다. 병진이와 난 눈이 반짝인다.

“저도 한 장 주세요. 아저씨!”

우린 둘 다 성공적으로 티켓을 한 장씩 받고 집으로 갔다.




“병진아 우리 몇 시 영화 볼래?”

“지금 시간이 애매하니까 좀 놀다가 4시 영화 보자.”

“그래. 맞제. 지금 시간이 쫌 그렇제? 알겠다. 일단 딱지 한판 치자!”

나와 병진이는 딱지를 열심히 쳤다. 어깨가 아프고 땀이 뻘뻘 날 때쯤 시계를 봤다. 벌써 3시 30분이다.

“병진아 영화관 가야 되겠다.”

“어. 그렇네, 정리하고 가자.”

우린 서면으로 걸어갔다.

“근데, 엄마하고 할머니한테 말 안했는데 괜찮겠제?”

급하게 나온 난 바느질 공장에 계신 엄마에게 말을 못 한 게 그제야 생각났다.

“나도 할머니한테 말 안 했는데 뭐 다 보고 빨리 오면 되지.”

병진이도 할머니께 영화관 간다고 이야기를 못했나 보다.




오랜만에 가는 영화관이라서 잔뜩 기대가 됐다. 서면은 언제나 북적북적하다. 어른들 없이 우리끼리 이렇게 서면까지 걸어온 건 거의 처음이다.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영화관 앞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북적북적해서 마음이 놓였다.

은하극장 앞에 많은 먹거리와 맛있는 냄새가 우리를 자극한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병진이와 난 둘 다 돈이 없다.

“그냥 영화만 보자. 그게 어디고?”

병진이가 웃으며 말한다.

“그래. 그러자.”

오랜만에 온 영화관은 낯설다. 우린 영화관 중앙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니 영화관은 깜깜하게 어두워졌고 스크린은 밝아졌다. 개구리 소년 실종에 대한 글귀가 나온다.

그리고 “실종 아동 가족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글이 나온다.

마음이 좋지 않다.




영화는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배우들이 웃겼지만 개구리 소년 실종에 대한 내용을 그동안 많이 보고 들었기에 조금 슬프고 무섭다.

생각보다 영화가 길었다. 영화가 끝나니 시간이 6시가 다되어 갔다.

“야! 우리 너무 늦은 거 아니가? 빨리 가자!”

난 너무 늦어 엄마한테 혼날까 걱정됐다.

“게안타. 지금 가면 30분 안에 걸어갈 수 있다.”

병진이는 할머니와 같이 살아서 크게 걱정 안 하는 거 같다. 할머니는 우릴 혼내시는 분이 아니니까.

우린 급하게 영화관을 나와서 서면위에 있는 우리 동네로 뛰어갔다. 가을에 접어들어서인지 해는 생각보다 빨리 졌고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서면은 여전히 밝았지만 동네 어귀에 도착하니 주위는 어느새 새까맣게 어두웠고 주위에 우리뿐이었다. 그런데 저기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거 같다.




“규야~ 규야~”

“병진아~ 병진아~”

자세히 들어보니 나와 병진이를 부르는 소리다. 아마 우리를 찾고 있는 소리 같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진아 이게 문 일이고?”

“몰라? 고모랑 할매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노?”

우릴 헐레벌떡 뛰어갔다. 마을 어귀에 큰 밭에서 엄마가 나를 발견했다.

“아이고~ 규야~ 아이고~ 규야~”

“병진아~ 이놈의 손들아”

할머니와 엄마가 우릴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 두 팔 벌려 우릴 안는다.

우린 어리둥절해서 서있다.

“아이고 놀래라. 너거 없어진 줄 알고 우리가 얼마나 놀랬는지 아나? 너거 어디 갔다왔노?”

엄마가 눈을 크게 뜨시고 소리 친다.




“엄마, 우리 실종아동 방지 캠페인 영화보고 왔다.”

“할매, 우리 영화관 갔다 왔다.

우린 당황하며 엄마와 할머니께 말했다.


“야~ 이놈의 손들아 그라면 말을 하고 가야 될 거 아니가?”

그때 서야 우린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영화를 본 이유들을 느끼게 되었다.


“실종아동 캠페인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너거나 조심해라. 임마!”

엄마는 금세 화가 나신 듯 소리 치신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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