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날 밤, 쫑이 돌아오지 않았다!

by 브로콜리

“쪼오옹~아~”

동네에 울려 퍼지는 엄마 목소리.

저녁 8시쯤 되면 엄마는 대문 앞에 서서 누군가를 부른다. 바로 우리 집 마당에서 살고 있는 터줏대감 강아지 쫑을 부르는 소리다. 쫑은 우리가 키우는 노랑색 강아지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리가 이사오기 전부터 우리집에 살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집에 살던 옆집 지은이 누나네에서 키우는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쫑은 지은이 누나와 아주머니가 집에 오면 ‘깽~깽~ 멍~멍’하며 앞다리를 숙이고 뒷다리는 쭉 피며 엉덩이를 하늘 높이 들어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마치 내 진짜 주인은 바로 이분들이라고 광고하듯 그들을 반긴다. 매일 쫑을 쓰다듬고 먹을 것도 챙겨주는 나로선 조금 섭섭하다. 지은이 누나와 아주머니는 쫑에게 큰 관심은 없다. 그래서 주로 우리 집에서 쫑 밥도 주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쫑은 목줄 없이 자유롭게 동네를 뛰어 당기는 강아지다. 온 동네를 뛰어다녀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쫑을 안다.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저녁이 되어도 집에 안 들어오고 동네를 방황하는 때가 많았다. 저녁에는 집 대문을 잠가야 해서 엄마는 밤마다 쫑을 불렀다.

“쪼오옹~아~”

그러면 똑똑한 쫑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정말 기분 좋다는 듯 ‘헥헥’ 거리며 전력 질주해 집으로 달려온다. 그리곤 마당에 있는 나무 밑 개집으로 쏙 들어간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쫑의 하루는 끝이 난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저 멀리 동네 끝에서 쫑이 날 마중 나온다.

“쫑! 잘 있었나?”

쫑은 날 에스코트하듯 내 옆을 걸으며 나와 같이 집으로 걸어간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따라오면 조금 당황스럽지만 이렇게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만나는 쫑은 너무 반갑고 사랑스럽다.

마치 “이제 왔나?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고생했다.” 하고 날 반기는 느낌이다.


오늘은 아빠 월급날이다.

“여기 oo 동 새싹탁아소 골목 첫 번째 꺼먼 대문 집인데요. 반반 한 마리 갔다 주세요!”

난 신이 나서 처갓집에 통닭을 시킨다. 한 마리로 우리 다섯 가족이 나눠서 먹는다. 그래도 맛있다. 그 맛이 오늘도 기대된다.

부릉부릉. 골목 어귀에서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난 잽싸게 뛰어나간다.

“여기요! 여기!”

통닭을 받아 마당으로 들어가면 쫑이 난리가 나 있다. 지은이 누나와 아주머니가 집에 왔을 때 하는 쫑 특유의 반가움을 표현하는 행동을 한다. 쫑이 가장 좋아하는 통닭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통닭 냄새로 통닭을 파악한 건지 오토바이 소리와 내가 나가서 뭘 받아오는 분위기로 통닭이라 추측한 건지 모르겠다. 쫑은 우리가 먹고 남은 통닭 뼈를 가장 좋아한다.

‘깽~깽~ 멍~멍’

“쫑아 절로 가라. 임마! 내 좀 먼저 묵자.”

통닭을 먹는 동안 현관 앞마당에 앉은 쫑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고 앉아있다. 꿈쩍도 안 하고 기다린다. 통닭을 다 먹고 치우기 시작하면 쫑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제 쫑의 시식 타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 통닭뼈가 목에 걸려 죽을 뻔했다. 그 후로 더욱 능숙하게 통닭 뼈를 잘 씹어 먹는다. 오늘도 목에 걸리지 않게 바삭바삭 잘 씹어 먹는다. 그렇게 그날 저녁 쫑은 포식을 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엄마는 그날도 대문에 서서 쫑을 불렀다.

“쪼오옹~아~”

아무 반응이 없다. 저기 멀리서 뛰어와야 할 쫑이 오늘은 뛰어오지 않는다.

“이상하네. 야가 어디 갔노?”

그렇게 그날은 대문을 못 잠그고 잤다. 워낙 자유롭게 다니는 쫑이었던지라 어딘가에서 놀고 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며칠간 쫑이 안 들어왔다고 생각도 못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쫑이 안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 나는 쫑이 걱정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쫑 저기 윗동네에서 누가 봤다던데?”

동철이가 나에게 말했다.

“어? 어디서?”

난 놀라서 물었다.

“몰라 누가 봤는데, 어디 다쳐서 누워 있었다고 하더라.”

“어? 뭐라고? 다쳤다고? 어디서 봤다데?”

“몰라 자세히는 못 들었다. 그냥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 들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찾으러 가야 하나?”

난 걱정되었지만 어떡해야 할지 막막했다.

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다른 사람들이 쫑이 저기 어디 다른 동네에서 다쳐서 누워 있는 걸 봤다던데?”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누가 그러데?”

“모르겠다. 나도 동철이가 하는 말 들어서. 엄마 들은 거 없나?”

엄마는 대답이 없다.


난 쫑을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어딘지 몰랐다. 아니 사실 용기가 부족해 찾으러 가지 못했다. 막상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하나 몰랐다.

‘동물들이 다니는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나? 아님 벌써 죽었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 난 결국 쫑을 찾으러 가지 못했다.

쫑은 그 뒤로 우리 곁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지은이 누나네 아주머니와 엄마 대화를 엿들었다.

“쫑이 안 들어와서 어짭니꺼?”

“차라리 잘 됐습니더. 나이도 10살 넘어서 늙어가, 어떡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거든예.”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지은이 누나네 아주머니는 역시 쫑에게 그렇게 큰 애정은 없었나 보다.

‘원 주인이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난 애써 쫑에게 미안한 마음을 달랜다.


몇 달 후 어느 날.

컴퓨터 학원 앞 사거리에서 같은 동네 사는 동생인 철중이가 하늘을 보고 목 놓아 울고 있다. 자세히 보니 옆에는 하얀 강아지가 한 마리 쓰러져 있다. 차에 치여 죽은 거 같다. 철중이가 키우던 강아지인가 보다. 철중이는 목 놓아 운다. 난 너무 슬펐다.

철중이 강아지가 다쳐서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난 왜 쫑이 다쳤다고 했을 때 저렇게 철중이 처럼 용기 있게 울지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쫑이 너무 보고 싶고 걱정됐는데.’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찾으러 헤매기라도 할걸. 목놓아 울기라도 할걸...’

그런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철중이도 저렇게 지 강아지를 사랑하고 그 사랑과 슬픔을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는데. 난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서…’


난 오늘도 길을 걷다 우연히 지나가는 다른 강아지를 보며 쫑을 떠올린다. 그리고 쫑에게 미안해진다.

‘내 영원한 강아지 쫑아, 그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 저 세상에선 좋아하는 통닭 실컷 먹고 신나게 뛰어다녀.’

keyword
이전 09화영화관에서 본 개구리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