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 시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12

박사 과정을 버티게 해준 책

by 브로콜리

박사 과정 내내 책을 읽었다.
논문 리젝을 받은 날도, 일정이 빠듯해 숨이 막히던 날도, 지도교수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던 날도. 내 책상 한켠에는 항상 논문 파일 옆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주변에서 가끔 물었다. "그 바쁜 와중에 책은 무슨 책을 읽어요?"
난 대답은 못 했지만, 혼자 있을 때 꾸준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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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취약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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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급박한 상황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일이 몰리면 흥분하고 정신없어졌다. 자포자기하고 일을 그르쳤다. 실패하면 핑계를 댔다. 실패 자체가 싫어서 아예 도전을 못하기도 했다.
박사 과정에 그런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논문 리젝, 디펜스 탈락, 빠듯한 일정. 이 과정은 급박한 상황의 연속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진작 무너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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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생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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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박사과정생 때가 가장 심한 것 같다.
본인 연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과정이니까.
하지만 이 좁아진 시야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문제가 된다.
연구 확장이 안 된다. 내 분야 밖을 보지 못하니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 멘탈이 취약해진다. 연구가 곧 나 자신이 되어버리니 리젝 한 번에 전체가 흔들린다. 지도교수님, 동료와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내 관점만 옳다는 전제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내 연구 외의 세계에 관심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스스로를 취약하게 만드는지 한참 뒤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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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바꿔놓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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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달라졌다.
급박한 상황에서 흥분하고 패닉이 오는 건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뇌가 그렇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관리할 수 있었다. 실패를 데이터로 보는 법을 배우고 나서, 리젝 받은 날도 무너지는 대신 다음을 준비하게 됐다.
좁아진 시야도 마찬가지였다. 연구 밖의 책을 읽으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뇌과학 책은 내 반응을 이해하게 해 줬고, 심리학 책은 관계를 보는 눈을 넓혀줬고, 시간관리 책은 연구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게 해 줬다.
박사 디펜스 마지막 기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 압박에 정신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달랐다.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할 것을 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멘탈을 관리했다. 디펜스에서 지적을 받아도 금방 추슬렀다. 수정하고 다시 했다. 두 번, 세 번, 계속.
그게 가능했던 건 실력이 갑자기 늘어서가 아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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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박사 과정에서 도움이 됐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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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뇌과학, 심리학, 시간관리 계열이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 일 잘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 이윤규
- 일취월장 — 고영성, 신영준
- 마인드셋 — 캐럴 드웩
-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 가바사와 시온
- 그릿 — 앤절라 더크워스
- 몰입 — 황농문
- 행복의 기원 — 서은국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
- Give and Take — 애덤 그랜트
- 원씽 — 게리 켈러
- 프레임 — 최인철
- 더 시스템 — 스콧 애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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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을 버티게 해 준 건 실력만이 아니었다.
리젝 받은 날 밤, 펼쳐든 책 한 권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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