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를 읽고
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을 읽으며 생각했다. 가족과 가정은 다르다. 우리는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지만,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가정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채식과 꿈을 좇다가 가정과 가족을 모두 잃었다. 『몽고반점』의 형부는 예술적 욕망을 위해 가정을 포기했고, 그 결과 가족 관계마저 파괴되었다. 그러나 『나무 불꽃』의 인혜는 달랐다. 그녀도 부모님과 남편, 동생 사이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결국 그녀는 가정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해.
나는 인혜를 이해한다.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폐렴이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뒤 그녀는 지우를 안고 빗속의 택시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다. 서둘러 아이를 씻기고 죽과 약을 먹여 일찍 재웠다. 그녀는 사라진 동생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을 조일 여유가 없었다.(184p)
아이의 단내 나는 작은 몸뚱이가 곁에 눕고, 아직 죄지어보지 않은 어린 얼굴이 곤한 잠에 들고 나면 어김없이 밤은 다시 시작된다.(274p)
지우는 곧 자랄 것이다. 혼자서 글을 읽고 사람들을 접할 것이다. 언젠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아이의 귀에 들어갈 그들의 일을 그녀는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천성이 예민하며 병치레가 잦긴 하지만, 아이는 지금까지 비교적 밝은 성격으로 자라왔다. 그녀는 그것을 계속 지켜갈 수 있을까.(263p)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털어놓았다.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어."
그는 결혼한 지 10년 차였다. 아내와의 관계는 냉랭했고, 아이들은 그를 점점 멀리했다. 퇴근하면 조용한 집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터 같은 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끝내버리고 싶어." 그가 말했다.
나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나무 불꽃』의 인혜가 떠올랐다.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떠난 후에도 그녀는 남겨진 아이를 위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때로는 숨이 막히고, 벽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겠지만, 결국 그녀는 아이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아이가 있는 곳이 그녀의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정말 끝내고 나면, 네가 원하는 행복이 올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무 불꽃』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혜가 어떤 삶을 살아냈는지, 그 선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나는 내 아이가 아직 어릴 때는 몰랐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우리가 주는 환경 안에서만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나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내 주변에는 다양한 가정의 모습이 있었다. 이혼을 한 가정, 별거 중인 가정, 빚에 시달리는 가정, 재혼 가정. 나는 그중 한 지인의 가정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처음에는 행복해 보였다. 부부가 함께 웃었고, 아이들도 밝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부부는 점점 대화를 줄였고, 결국 서로 등을 돌렸다.
나는 고민했다.
우리 아이도 그 지인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그 가정의 민감한 이야기를 모르고 건드리지는 않을까? 아이가 너무 어린 나이에 가정의 갈등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첫째에게 말을 꺼냈다.
"혹시 그 K네 알지?"
아이의 눈은 다른 곳을 응시했다.
"응, 알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혹시 그거 알아?"
아이는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아빠가 말하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숨기려 했던 이야기들, 어른들만의 복잡한 사정. 나도 어릴 때 부모님과 친척들 사이의 문제를 아무도 내게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들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했다.
우리 아이도 그랬다. 부모가 말해주지 않아도, 삶은 저절로 아이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가정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한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부모가 가정을 위해 힘겹게 하루를 버티는 모습을 보며, 아이도 배우고, 성숙해지고, 언젠가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조용히 눈물을 삼키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바쁘게 일을 하였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했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챙기고, 가정을 지키면서도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된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엄마는 힘들지 않았어?"
어머니는 대답했다.
"힘들었지. 하지만 엄마가 힘들다고 도망가면, 너희는 어떻게 해?"
어린 시절의 나라면 그 말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가정을 꾸미고 나서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도 선택의 기로에 섰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우리 가족을 위해 가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나무 불꽃』의 인혜도 그랬다. 남편은 떠났고, 가족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위해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안다. 가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때로는 나도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라는 것을.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드는 공간이야말로 내가 지켜야 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인혜를 이해한다.
나는 나의 가정을 지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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