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글이 훨씬 편한 사람이 바로 나다. 자기소개 시간은 늘 예고 없는 강제 쪽지 시험 같아서 마음의 부담이 크다. 다른 분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심장은 메트로놈처럼 콩닥이 아니라 쿵쾅거리며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듯이 세기 시작한다. 머릿속에 준비해 둔 문장들은 서로를 밀치며 엉켜버리고 생각들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여러 번의 MBTI 검사 끝에 늘 같은 결과로 돌아오는 나의 성향은 INFJ '선의의 옹호자'다.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마음이라 편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늘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말보다 더듬거림과 홍조가 먼저 도착하는 몸의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뒤늦게 찾아온다. 아직은 낯선 곳에서 턱을 괴거나, 물을 마셔보며 애꿎은 손과 발을 어쩔 줄 몰라한다.
첫 수업부터 눈물을 보였다. 주책맞다는 생각이 들 틈도 없이 눈가가 먼저 뜨거워졌다. 원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버지 암투병을 하면서부터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아'자만 꺼내도 울컥거리는 슬픔이 밀려와 말은 끝내 문장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마음과 눈물이 동시에 반응한다.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도 그랬다. 인순이의 아버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을 뿐이데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곱게 한 눈 화장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으로 닦아내며 노래를 정지시켰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아버지가 오래 사실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는지, 어릴 적 철없던 날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 때문인지, 생각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지만, 어느 하나로 딱 정해지지 않는다. 슬픔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을 하기에는 부족해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한바탕 흘리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한다.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글벗들은 각자의 언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모두 일목요연하고 조리 있게 소개를 잘하니 놀라웠다. 감기까지 걸린 상태에서 걸걸한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은 나에게 쉽지 않았다. 글벗들의 말은 단정했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부드러움으로 들려왔다.
어제의 기억이 조금만 닿아도 금세 번져 버리는 화선지 같은 이 마음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보이기 어려운 어색하고 낯선 감정이다.
줌 수업이 끝난 뒤 나는 다시 글 앞으로 돌아온다. 말과 글은 자음 한자 차이일 뿐인데, 나에게는 이게 어렵다. 수업 중에 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옮기며 글 안에서 나를 소개한다. 울컥한 마음도, 더듬거리던 말도 글 속에서는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말보다 글이 편하다. 글은 나를 기다려 주며, 망설이고 되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어쩌면 나의 소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로 다하지 못한 부분은 글로, 문장으로 다시 이어질 것이다. 어제의 눈물은 쪽팔림 아니라, 또 다른 글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쉽게 젖는 화선지 같은 마음이기에, 나는 더 깊이 스며들 수 있고, 말보다는 느리지만, 더 오래 남는 방식으로 나의 소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