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엄마의 품위 있는 커피 취향은 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엄마는 늘 빨간 뚜껑의 브랜드 커피를 티 스푼으로 커피잔에 조금씩 덜어마셨다. 설탕과 프림을 섞어 마시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언제나 한 가지 맛만 고집했다. 찻잔은 튤립모양의 자그마한 크기로 손잡이는 두 손가락 겨우 들어갈 만큼 작았고, 잔의 입구는 꽃이 활짝 필 때와 같은 모양이었다. 쌉싸름한 커피 향 내음을 먼저 코로 한번 맡는 약간 품격 있는 엄마의 분명한 취향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어느새 각인처럼 자리 잡았다.
우연한 기회가 생겨 마음속으로만 미뤄 두었던 노동부 주관 개발자 양성과정에 지원했다. 그 덕분에 맹숭맹숭하게나마 공부를 꾸준히 하게 되었고, 그러다 IT 기업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겨서 인터뷰를 하러 가던 아침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한참 일찍 도착했고,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던 어디선가 흘러나온 커피 향에 매료되어 커피 향을 따라가다 보니,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뷰를 앞두고 커피를 마실 계획은 아니었는데, 어릴 적 맡았던 쌉싸름한 커피 향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 곳이었다. 카페 안 분위기는 햇살 한 자락이 스며드는 엄마 품처럼 따뜻했고, 그곳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나를 조급함에서 쉬어가게 해 주었다. 그날의 긴장으로 굳어 있던 아침을 풀어준 덕분인지 합격하게 되었다.
사계절이 바뀌어도 내가 고르는 커피의 원두는 산미가 있는 것이 좋다. 첫 모금을 마시면 입안에서 톡 퍼지는, 약간은 짜릿한 풍미를 좋아한다. 어머니가 늘 빨간 뚜껑 브랜드의 커피를 늘 마셨 듯, 나 역시 나만의 취향을 찾았는데 그건 바로 아이스아메리카노이다. 여러 커피를 마셔봤지만, 어릴 적 맡았던 그 향과 닮은 맛의 향이 어어지는 듯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얼음이 유리컵 안에서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 때문이다. 컵을 들 때마다, 빨대를 살짝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짤랑거리는 소리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얼음과 유리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듯 부딪히는 그 순간의 소리는 나에게는 잠깐의 바다 같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러나는 소리를 들으면 생각이 잔잔해지는 겨울 바다처럼, 유리컵 안의 달그락 거리는 얼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바위에 물보라가 일어나는 바다의 풍경을 떠올린다.
나만 아는 크기의 파도, 나만의 방식으로 불러오는 겨울바다. 인터뷰를 보러 다니던 시절, 커피 향에 이끌려 들어갔던 그날의 낯설고 긴장된 마음이 풀렸던 것처럼, 오늘도 나는 얼음 소리를 들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나만의 바다를 잠시 곁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