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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빛

#30 에필로그: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by 비비안

존재의 빛


해후이자 머뭇거림이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이별에 대하여

캔버스에 얼룩지는

햇살에 대하여

아우성의 바다는 속수무책이다.


한 방울의 눈물이나

단 하나의 투쟁도

남겨두지 않을 거야.


절벽을 넘는다

새가 되어 넘는다

소리로

빛으로 씻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날아가서

새집을 지으라고

손짓하는 어머니.


오랜 나눔을 청산하고

선선히 돌아서리라

누가 또 흔적 없이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리

존재의 빛이여.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브런치북을 30회 가득 채우며 마무리합니다.


아버님은 교직 은퇴를 하시며 문학도의 꿈을 첫 번째 시집인 "그 선명한 구름꽃들"을 출간하시며 이루셨습니다. 그 뒤에도 두 번째 시집 "그대를 기다리며", 세 번째 시집 " 어떤 일월"을 통해서 계절을, 세월을 그리고 본인의 삶을 시를 통해 그려 나가셨습니다.


20251116_193419.jpg 아버님의 네편의 시집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를 대신해 어머님과 함께 손주들을 돌보시며 그렇게 뒤에서 저희 자식들의 든든한 지원자로 오랫동안 머무실 줄 알았는데, 코로나 백신을 맞으시고 급성으로 건강을 잃으시고 결국 몇 해 전 영면하셨습니다.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하시기 위해 그간 쓰셨던 시들을 모으시는 중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어서 시집은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남편과 도련님은 아버님을 대신해 시들을 모아, 중간중간에 어머님이 그리신 그림들을 삽화로 추가해 아버님의 네 번째 시집인 " 지금 있는 곳에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를 올해 봄 처음 시작하며 2개의 브런치 북을 매주 발행하고 있었는데, 문득 아버님 시를 매주 한편씩 선정해서 올리고, 그 시를 보고 느낀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올려보자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이라는 이름의 브런치북을 추가로 쓰게 되었습니다.


해당 브런치북을 쓰는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감정은 아쉬움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시집을 주셔도 책꽂이에 잘 모셔만 두었던 저희들이었거든요. 시를 읽고 " 아버님 이 시는 너무 좋은데요, 저는 이 시가 참 좋아요" 부끄럽게도 이런 말 한마디를 해본 적이 없었답니다.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한 편의 시를 올리기 위해, 그때그때 쓰고 싶은 나의 감정을 닮은 시를 찾기 위해 여러 번을 읽고 또 읽으면서...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의 감정이 참 많이도 찾아왔답니다.


그래도 아버님의 제자로서, 며느리로서 더 늦기 전에 이렇게 시집을 대하고, 또 많은 작가님들과 함께 공유하게 되었으니 다행이겠지요. 하늘나라에서 기특하게 지켜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권유로 50대부터 평생교육원에서 그림을 배우셨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아버님의 시집에 실린 시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환상의 단짝의 그림들입니다. 단짝을 잃은 어머님은 그림을 그리시며 시간을 잘 보내고 계십니다.


아버님의 존재의 빛...

우리 가족에게 참 따뜻하게 영원토록 함께 할 것입니다.


그동안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을 읽어주시고, 따뜻한 댓글로 함께 해주신 글벗님들께 감사드립니다.


P.S 주말 친정에 모여 김장을 하고 집에 돌아와 김장이 든 김치통을 끙끙대며 엘리베이터에 실고 올라가는데, 함께 탄 중년의 여성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김장하셨군요. 저는 친정엄마가 작년에 돌아가셔서 이젠 김치도 사 먹어요. 너무 그립습니다. 엄마 김치가..."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문득 저희 시아버님도, 친정아버지도 헤어지는 순간은 예측 없이 다가왔음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마음 한가득.. 아끼지 말고 더 자주 표현하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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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시와 어머님의 그림



사진 출처: 개인 소장

#에필로그#감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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