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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망과

#29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by 비비안

빛과 소망과


삭정이울타리 너머로 넘실거리는

아침안개 속의 햇살

핏빛 맨드라미 파고든다

봉숭아꽃 물들이는 누나 곁에 앉아서

먼 바다 건너오는 푸른 바람

사각사각 모래톱을 밟는 소리 듣는다

떠나기와 돌아오기를 되풀이 하는

저 메마른 둑

혼신의 풀꽃들


유년의 전설은 평토에 묻고

떠오르는 소망으로 가득 채우자


그대를 기다리며/ 이양복 시집/ 창조 문학사




11월 13일 이번 주 목요일은 수능일이다.

한국에서 수능일은 수능을 치르는 가족이 있든 없든 참 긴장되는 한 주다. 당일 날씨는 어떨지부터 체크하고 온 국민이 함께 긴장하고 숨죽여 하루를 보내는 그날이다.


올해는 사랑하는 나의 조카가 첫 수능을 치르고 또 절친의 딸과, 회사 동료들의 자녀들도 수능을 치르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그 시간 나의 조카와 내 친구의 딸이름을 불러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수능일이 빛과 소망의 그날이길 바라며..


나의 수능일은 끔찍했다.

일교시 언어영역 시험 전 난방을 위해 설치된 교실의 난로에서 잠시 불이 붙었다. 어떤 이유 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아마도 난로 심지에서 불이 붙었던 것 같다. 금방 불은 꺼졌지만, 곧 시작될 국어 듣기 평가(그 당시엔 국어 듣기 평가를 했다 ㅠㅠ)를 위해 창문도 열지 않고 바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내 코앞에 그 문제의 난로가 있었을까...

듣기 평가가 끝나고 긴 지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지문이 하나도 읽히지가 않았다. 환기되지 않고 교실에 남은 그 연기를 고스란히 들이마셔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90분이 종료되도록 아직 풀지도 못한 문제가 20문항이 넘었다.


사고에 가까운 수능 1교시를 치르고 화장실로 향했다. 머릿속엔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마음뿐이었다. 화장실에 가니 "망했다"를 연신 내 맽으며 몇 명이 울고 있었다.

그 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부모님이었다. 대학생인 오빠 둘을 뒷바라지하고 계셨다. 나를 포함해 한번에 세명은 힘들어 오빠들은 내년 내가 대학에 입하는 달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빈틈없이 다섯가족이 합세한 막내인 나의 입시 계획이... 1교시 교실이탈로 도저히 마무리되게 할 수 가 없었다.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교실로 향했다. 복도에서 찬바람을 맞으니 깨질 듯 아팠던 머리도 좀 나아졌다. 그렇게 남은 시험들은 평상시 컨디션으로 치렀다. 하지만 1교시에서 무너진 시험결과 덕분에 나의 수능점수는 처참했다.


그 절망 같던 점수를 들고 내신반영을 가장 많이 해주는 대학에 점수를 맞춰 들어갔고, 대학 졸업 후 계약직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하였다.


직장 생활 25년을 돌아보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했기에 일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런 나의 일을 대하는 태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것 같다.


절망 같던 그날이, 돌아보니 더 강한 나를 만들어 준 날이었다.

그날의 절망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이후 나는 더 단단해졌고, 더 깊어졌고, 더 넓어졌다. 삶이 늘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19살 수능을 통해서 깨달았다.


유년의 전설은 평토에 묻고

떠오르는 소망으로 가득 채우자


이번 주 수능을 치르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어떤 모습의 수능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절망에 머무리지 않고, 소망으로 가득 채우는 시작의 그날이기를 바래본다.




오늘도 찾아와 글로 공감하여 주시는 글벗에게 감사드립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



사진 출처: 개인 소장

#빛과 소망#수능#성장#미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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