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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의 침묵!

by 김석철 Feb 15. 2025



 국민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의 철딱서니 없는 형제의 계획은 거창했다.


 1. 함바 식당을 하던 어머니의 전대에서 슬쩍한 돈으로 일단 서울로 튄다.
 2. 먹고 재워주는 중국집에 취직을 한다.
 3. 동생은 공부를 하고, 형은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큰돈을 벌어 재벌이 된다. 끝!

 삼 일간 주도면밀하게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거사가 시작되었다. 복병을 만났다. 과감하게  손을 넣은 엄니의 전대 속에는 달랑 동전 몇 푼이 전부였다. 낭패가 났다. 군자금이 없으니 거사고 나발이고 나가리가 될 판이었다.
 죄송하지만, 새벽 일찍 식당으로 나간 엄니가 야무지게 꼬불쳐 둔 장롱 속 쌈짓돈을 허락 없이 몇 년 간만 빌리기로 했다.

 밀양 삼랑진역에서 밤늦게 한양으로 출발하는 삼등열차를 타야 했다. 겨울 초입에 들어선 널찍한 대합실에서 거의 하루를 빈둥거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잘 있거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두 놈을 실은 기차는 요란한 기적을 울려대며 동강을 가로질러 무심하게 서울로 향했다.


 난생 처음 기차라는 걸 타서 신바람이 난 동생과 마주 앉은 할머니가 물었다.

"너그는 오데까지 가노?"

"서울예"

"아따, 멀리도 가네. 그란데, 너그끼리 가는 가베? 와? 어른은 안 계시나?"

"예, 없어예! "

할머니가 짧게 혀를 차며 꼬불쳐두었던 계란 두 개를 쑥 내밀었다. 받으라고 말없이 고개만 까딱거렸다.

 가출을 하는 마당에 어른은 당연히 없는 건데, 할머니는 지례짐작으로 고아가 된 측은한 형제라고 넘겨짚은 게 틀림없었다.

 불심검문은 시부적이 통과를 했다.


  낮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하던 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평택 큰 집에 들렀다 갈래?"
 "그래!"

 "너그, 이 시간에 우짠 일이고?"
 단박에 상황 파악을 끝 낸 큰어머님은 호들갑을 떨며 대가리 피도 덜 마른 두 어린 조카 놈을 사절단 모시듯 부산을 떨었다. 뒤로는 은밀하게 엄니와 내통을 하였고, 엄니는 식당에서 일하는 복장 그대로 지체 없이 두 놈의 체포에 나섰다. 형님의 변심, 큰집과 엄니의 완벽한 공조로 거사 2단계를 코 앞에 두고 쫑을 치고 말았다. 이렇게 철가방의 성공 신화는 물 건너가 버렸다.


 실패한 거사 때문에 삼일을 무단결석했다. 졸지에 대역죄인의 신세가 되어 쭈뼛쭈뼛 교실문을 열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지만, 이여사의 죽이고 말겠다는 서슬 퍼런 눈짓을 이길 도리는 없었다.

"김개똥? 변강새는 왔어?"
포위망이 좁혀 온다. 숨이 막힌다.
"돌쇠?"
".....".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온다.
"금돌쇠!".
  쌤의 출석 톤이 미세하게 높아졌다.
"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 년 전, 학교 핸드볼 선수 감독을 하던 쌤과 선수로서의 인연으로 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 감독님이 지금의 담임쌤이다.

 '어라? 이걸로 끝이야?'  
 삼일 동안이나 뭐 하고 자빠졌다가 왔어! 안 물어봐? 이대로 싱겁게, 회초리 한 번 없이?

호되게 야단을 맞을 거란 예상과 달리 아무 말씀이 없으니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돌쇠, 니는 인자 디졌다. 쌤 올매나 무서븐줄 알제?"

"끄지라, 시키야!"

나무라는 시애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상이라더니, 가뜩이나 죄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염장질을 해댔다. 우라질놈의 짜썩들...
 이후로도 쌤은, 마치 처음부터 같은 자리에 계속 있었던 학생처럼 일언반구 없이 똑같이 나를 대해 주셨다.

단 한 차례도 가출건에 대한 말씀을 입에 담지는 않으셨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서야 나는 안다.
최고의 용서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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