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티 고개의 마루에는
늙은 애미와, 늘상 주둥이를 한 발이나 내밀고 웬 종일 툴툴거리는 아들이 있다.
늙은 애미는 장작불 피워가며 국시를 말고, 한량 같은 아들놈은 허구헌날 부라린 눈, 떡 벌어진 아가리의 벅수와 씨름질이다. 덥수룩한 구렛나루에 샛노랗게 물들인 꽁지머리, 꼴에 개량한복 걸쳐 입고 아트라는 걸 한답시고 장승이나 조물딱거리고 있으니 정작 국수장사는 늙은 애미만 독박을 썼다.
옴마, 국수장사 할낀데 쪼깨이 도와 도.
부탁을 가장한 납치를 당한 애미는 곰티고개로 졸지에 유폐가 되어 몸종 겸 주모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지매, 간도 크네. 이 고개 구신 나오요.
육이오 때 죽은 사람들, 구신이 버글버글 한다카이.
아따, 아재들 씰데없구로 벨 소리를...
곰티고개는 이제부터
한 맺힌 귀신들과,
한 많은 늙은이와
한이 뭔지도 모르는 한량 놈이 함께 지낸다.
0.5톤 라보에 대충 천막 하나 걸쳐놓고 소꿉장난 비슷하게 판을 벌인 국수 장사는 놈팽이 아들의 예상을 비꼬기나 하듯 손님들로 넘쳐났다. 의자, 탁자 하나 없이 서서 먹든, 눠서 드시든 재주껏 요기하고 가는 희안한 산 속 국수 장사집으로 몰려든 식객들.
요대로라면 조만간 떼돈에 눌려 죽을지도 모른다.
조댕이가 보살이라더니, 장사 좀 된다고 나불대는 오두방정을 태풍이 깡그리 핥아가 버리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 망할 놈의 팔자가 어디 가겠나. 재수 없는 놈은 앞으로 자빠져도 똥꾸녕에 돌이 박힌다더니, 딱 그 짝이다.
어차피 빈 손으로 시작한 거, 다 말아먹어도 본전인데 아쉬울게 뭐 있겠나.
자빠진 김에 쉬어 가라고, 내킨 김에 아예 사세를 확장하기로 맘을 다져먹었다.
지천에 남아도는 대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공장을 돌며 나무 팔레트를 줒어와 벽체를 꾸몄다. 제법 집 꼴이 잡혔다. 초가지붕을 이으려니 계절이 계절인지라 도무지 볏짚을 구할 수가 없었다. 비록 놈팡이처럼 건들거리기는 해도, 곰티재 쥔장은 나름 잔머리와 무대뽀 정신 하나는 쓸만한 사내다.
유월의 들판은 지천이 억새다. 물론 무한 공짜에, 한 움큼 베어간다고 눈칫밥 주는 이도 없다.
도로 공사장 인근에서 잘라 둔 소나무를 업어와서 울타리를 만들고 아기자기 등도 만들어 한껏 뽄새를 내었다.
마치 사극 드라마 세트장처럼 꽤나 그럴싸 한 산채가 몇 동 세워졌다.
드디어 백두대간 낙남정맥 한 자락의 '곰티마루'는 입구에 터줒대감으로 자리를 잡은 장승의 가슴팍에 큼지막히 상호로 새겨져 살아났다.
동네 어르신들의 공갈과는 달리, 귀신 대신 객들로 골짜기가 연일 북적였다.
띠포리, 무 대파 넉넉히 빠뜨리고 장작불에 달군 가마솥에서 반나절을 족히 고아 낸 걸쭉한 육수, 총총 썰은 계란지단, 참기름에 살짝 볶아 한 풀 죽인 정구지, 단무지 채 썰어 듬뿍 올리고 엄마 정성에 손맛 얹어서 내는 촌국수와 더불어, 홍합, 오징어 아낌없이 털어 넣고 땡초 약간 다져 넣어 노릿노릿, 파삭파삭 궈 낸 파전과 찰떡궁합 막걸리... 훅 터진 야외와 잘 반죽된 산채의 정경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잘 맞아떨어졌다.
평일에는 밤늦도록 아베크족들이, 휴일에는 먼 도시에서 까지 가족 단위로 곰티고개를 찾아와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만한 비포장 고갯길이 미어터졌다.
문전성시, 불이 나던 장사에도 불구하고 쪽박을 차고 말았다.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만들어온 곰티마루의 손 때 묻은 풍경들이 불꽃 속으로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시청으로부터 강제 철거의 행정 명령이 떨어졌다.
장사가 너무 잘 되었던 게 오히려 화를 불렀다.
미인은 시샘을 받고, 충신은 모함을 당한다더니, 입소문을 탄 장사를 아니꼽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나타난 것이다.
사촌도 아니고, 게다가 논을 산 것도 아닌데 남 잘 되는 꼴에 배알이 틀어진 익명의 어떤 이가 시청 민원실에 민원 청구를 제기하였다며 출두 연락이 왔다. 구차하게 머리까지 조아리고 싶지는 않았다.
억새띠로 엮어 얹은 이엉을 태움으로 곰티마루의 국수는 마지막을 한 줌의 재로 끝을 맺었다. 불티가 하늘로 춤을추듯 팔랑대며 날아올랐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늘 애매했던 부라린 눈의 장승이 화가 잔뜩 난 모습을 보였던 것도 그날이었다. 썩어 문드러진 애미의 가슴에 또 한 번의 커다란 못이 사정없이 박힌 날이기도 했다.
- 국수를 말며 -
물이냐 비빔이냐
한참을 고심하다
게으름이 소리쳤다.
"간장비빔"
벌교아낙 고향맛은 무조건 단맛이지.
인생이 쓰잖아.
에구, 내 팔자야
빨리 죽어야 될낀데...
늙은 애미
넋두리가
꼬시고 단맛 속으로 숨어든다.
새까맣게
새까맣게...
벌교댁 국수는
설탕도 치대면
쓰디쓴 소태맛이 난다.
눈물 맛은 짠 맛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