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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박수를.

by 김석철 Feb 05. 2025



 초등학교  사 학년 즈음의 기억이다.

 찰나 같은 순간이었지만, 평생 숫하게 많은 좌절의 순간들을 버티게 만든 꼴찌의 반란이었다.


 예전의 학생들은 온갖 구실의 동원에 끌려다닌 동네북이었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락 세우기 같은 노동에서, 종류도 많았던 별의별 잡다한 이름의 궐기대회, 체육대회의 관객 동원, 민관행사의 들러리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강제동원에 차출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비인기 종목인 육상대회의 참관이었다. 강제로 끌어다앉혀 둔 학생들과 관중보다 선수가 더 많은 썰렁하기 짝이 없는 대회는 가끔씩 터지는 총소리만이 경기 중임을 알렸다.

그저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한 뜀박질의 연속이었다. 선수들이야 죽기 살기로 필사적이겠지만, 관객의 시선에서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밋밋한 동작의 반복일 뿐이었다.


 붉은 바탕에 순백의 선이 선명한 트랙만이 전부인 선수들의 세계. 멈춰 선 몇 분의 바늘이 영겁을 다투는 것보다 치열한 시각이다.

 선수들은 시간과 선의 세계 속에 갇혀 앞으로 앞으로 뜀박질을 한다. 어떤 이는 앞서고 또 어떤 이는 앞서간 이가 지나치며 떨구고 간 붉고 하얀 무대 위의 흔적을 좇는다.

 후들거리는 다리의 근육에서 실핏줄이 터진다. 한 걸음 내딛으면 두 걸음 물러서는 결승선, 길잡이 하얀 선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우성치는 심장의 박동은 곧 멎을 것이다. 곧.

 

트랙 위의 시간은 멈추어 섰다.

 테이프는 끊어졌고, 승자의 포효는 아데나를 달군다. 1등은 기뻐서 울고, 2등은 아쉬위서 울고, 3등은 분해서 운다. 등 외는 기쁨도 슬픔도 기억해 주는 이가 없다.


 꼴찌의 반란이 멈춰버린 시간을 되살렸다.

 잔치는 막을 내린 지 한참인데, 한 바퀴나 뒤쳐진 꼴찌의 시간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다.

 '짝'

 '짝짝'

 텅 비어 버란 트랙 위로 한 사람만을  위한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눈처럼 내려앉았다. 거친 숨소리, 포기를 모르고 땅을 박차는 디딤발 소리만 선명했던 공간에 누군가의 박수가 더해졌다.  누군가에게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포개어지는 손뼉은 마침내 우뢰와  같은 함성으로 운동장을 뒤덮었다. 이미 혼자가 아닌 선수의 심장이 터지고, 지켜보던 어린 나의 심장도 터졌다.

 기억되는 것은 포효하던 일등이 아니라, 끝내 완주를 한 지친 꼴찌의 몫이었다. 끊어낼 테이프도 없는 결승선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꼴찌만을 위한 인간띠가 되어 마지막을 지켰다.

 최후까지 남겨진 자, 그가 진정한 승리자였다.

 포기를 포기했던 꼴찌의 위대한 반란, 그 벅찬 달음박질에 우리는 박수로 함께 달렸고 모두는 승자가 되었다.


 오늘도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과, 일상의 특별할 것 없는 트랙 위에 선다. 기쁨, 아쉬움, 분함, 그리고 잊힘...

감동으로 기억되는 꼴찌의 노래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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