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근데 걱정은 이제 그만.
러닝 후 송글송글 맺힌 땀을 식히며 걷고 있는데,
시장 어귀에서
어머님들이 삼삼오오 걸으시며 웃음꽃을 피운다.
마실을 나오셨나 보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와중에
이 기운을 만끽하고 있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웬만하면 나오지 않는
우리 이모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하루에 두 번씩 꼭 전화를 걸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지만,
이모란 존재는 무릇 그런 것이다.
친하지만, 묘하게 거리감이 있는 그런 사이.
생각난 김에 전화를 걸었다.
임영웅의 '이젠 나만 믿어요' 컬러링이 지나가고
첫마디가 흘러나온다.
"사랑하는 조카~
무슨 일이에요?"
항상 너무나 다정하다.
이 영향력이 엄마에게도 전해져
엄마의 첫마디도
"사랑하는 공주"가 되었다.
(이모 새삼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다정해졌잖아요.)
"길을 걸어가는데 이모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요.
밥은 챙겨 먹고 있죠?"
이모는 이런 용건이 나올 거라 생각을 못했는지,
놀라는 기색과 함께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한다.
"시장에 오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이모
같이 밥 먹어요!"
"그래요 좋아요~ 그런데 너무 안 걸어서 운동을 하고 싶은데
근처에 갈 곳을 문자로 남겨줄래요?"
엄마도, 이모도 휴대폰으로 검색하는 법을 모른다.
주구장창 유튜브는 틀면서도,
정작 검색은 모르는 60대 꽃다운 소녀들.
그리고는 마지막 인사도 꼭 빼놓지 않는다.
"매일 집에 있지 말고 밖에 나가야 해요.
좋은 사람도 만나고 이쁜 청춘 흘러가면 안 된다!"
"넹넹^-^ 이모 또 연락할게요!"
어지간히 걱정 많은 우리 이모님들
내가 시집 못 가고 늙어 죽을까 봐
결정사도 신청해 주시고, 만나기만 하면
누구라도 만나라고 그렇게나 이야기한다.
이 말들이 어찌나 듣기 싫은지
일부러 피해 다닌 적도 많았다.
직장을 그만 두면 그만둔다고 잔소리,
고양이 키우면 시집 못 간다고 잔소리.
살찌면 큰일 났다고 잔소리.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 잔소리들이 듣기 싫지가 않다.
나를 끔찍하게 아껴서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거구나.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거구나.
경상도에서 태어나 오지랖의 끝판왕을 달리는 그녀들이
더 이상 밉지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잔소리는 피해 가지 못하더라도,
그녀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싶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엄마가 암 수술받을 때
혼자인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던 이모.
마음속으로 새겨놓았다.
그녀의 아픈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엄마와 닮아서
가끔은 가시 박힌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녀들과 함께여서
흘러가는 세월이 든든하다.
아니 그런데,
삼촌은 왜 또 나한테 섭섭하대…
몸이 열 개여도 모자라다.
아무튼,
오늘도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잔소리로 안부를 묻는
우리 집 귀여운 잔소리 요정들.
다들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 내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들인 거 안다.
그러니까, 다음에 만날 땐
제발 ‘살 좀 빼라’는 말은
입밖으로 꺼내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