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9
상간 소송을 위하여 모든 증거를 모았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내겐 상간녀의 자백이 필요했다. 현재에게 지금 당장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다 쏟아내고 싶었지만 섣불리 행동했다가 그 여자가 꼬리를 자르고 발을 빼버릴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현재가 아닌, 상간녀에게 먼저 전화를 걸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김수정 주무관님 되시죠? 저 김현재 준위 와이프 되는 사람인데요.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네? 김 준위님 와이프 분이요?”
그녀의 목소리는 현재가 이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높고 몹시 까랑까랑했다. 별로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네. 저희 11월에 결혼한 거 아시죠?”
“네? 11월이요?”
왜 모르는 척 하니. 신혼여행 때도 그렇게 연락했으면서.
“얼마 전에 저희 신혼여행 갔다 온 것도 아시잖아요? 본인이 보내주셨다고, 사랑하니까 고통도 감당하시겠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생각으로 이러고 계신지 여쭤보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제가 지금 5분 정도 통화 하면서 만약 대답을 못 들으면 000 항공단장님이랑 인사과 000 소령님 오늘 만날 거거든요. 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고 그냥 담백하게 얘기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난 실제로 현재가 소속되어 있는 군단의 단장과 상간녀의 직속 상사인 인사과장 연락처를 받아두었다. 둘의 불륜과 현재가 매일 여군 숙소에 드나들며 군의 기강을 해이하게 만드는 사실 등을 다 폭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일 말이 안 통하면 군에 진정서를 넣든, 국민신문고를 넣든, 국방부에 민원 투고를 하든, 진짜 부대로 찾아가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그냥 친한 사이였고, 저를 되게 예뻐해 주셔 가지고 그렇게 가깝게 정말 친한 사이로 지내다가..."
“그런 얘기는 안 해주셔도 되고요.”
유부남인걸 알면서 만난 거냐는 내 말에 그녀는 엄연히 잘못된 거라는 걸 안다고 했다. 왜 남의 인생에 끼어든 거냐고, 내 인생 내 가정 책임질 수 있냐고 물었다. 다 책임질 수 있어서 그러고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죄송하다며 그만 만나려 했단다.
"아직 결혼 안 하셨잖아요? 저랑 김현재랑 이혼시키고 결혼하시려고 만나는 거예요?"
"아니에요. 헤어지자고 얘기를 했었고 그만 만나자고, 이건 아닌 거 같다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즐기시느라고 남의 가정에, 제 인생에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즐겼다기보다는..."
"그러면 본인들은 사랑이세요?"
사랑이냐는 물음에 현재와 얘기가 잘 통해서 의지를 많이 했단다. 사랑이고 밀회를 즐기고 거기서 스릴을 느낀 것도 아니고 친했던 사이에 더 가까워지다보니 그렇게 된 거고 생각이 짧았다고 했다. 넌 친하고 의지를 하면 그런 관계가 되는구나. 그렇게 모텔 드나들고 몸을 섞고 불륜관계를 유지하며 관사에까지 출입하는 거, 전부 군법에 위배되는 거 알지 않냐고 본인도 본인 인생에 책임질 수 없는 거 아니냐 물었더니 바로 정리하겠단다. 생각보다 빠른 인정과 사과였다. 아주 뻔뻔스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정리할게요. 정말 죄송해요."
"어떻게 정리하실 건데요?"
"그만 만나겠습니다."
바로 정리하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놀라웠다. 그렇게 절절한 둘의 사랑이 내 전화 한 통에 끝날 수 있다고? 믿을 수는 없지.
구두로 안되고 각서를 써서 합의를 보겠냐 하니 그렇게 하겠단다. 그렇게 끝내야 나중에 말이 안 나오고 본인도 본인이 즐긴 거에 대해서 책임지는 거니까. 그걸로 더 이상 법적으로는 책임을 안 묻겠다고 했더니 안도하는 것 같았다. 너 징계도, 소문도 무섭긴 하구나.
무조건 소송으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상간녀와의 통화가 생각보다 순조로워서 합의로 끝내기로 마음을 바꿨다. 결혼 기간이나 현재의 외도 기간을 따져 봤을 때, 승소해도 내가 위자료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소송은 일 년 가까이 끌어야 하고, 내 아까운 돈과 시간을 이딴 거에 들이며 스트레스 받기도 싫었다. 합의금 3천. 합의서에는 둘이 다시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으면 1회당 천만 원을 더 지급한다는 것과 합의금 마련에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이젠 현재에게 연락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