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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잃어버린 과학

피라미드의 미스터리, 피라미드

by Polymath Ryan Ma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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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미스터리


필자가 어릴 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관한 책과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크기와 높이로 늘 궁금함이 있었다. 이집트 기자 Giza 지역에는 4,500년 이상 된 피라미드들이 여전히 서 있다. 기원전 2,580~2,560년에 지어진 대피라미드는 크기뿐만 아니라 정밀도 때문에 많은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 이집트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피라미드의 돌은 총 230만 개 이상의 돌이 사용되었단다. 평균 돌의 무게는 2.5톤, 가장 무거운 돌은 80톤에 달한다. 어떻게 돌을 쌓았을까? 고고학자, 물리학자, 건설가 등이 그 방법을 도전해 보거나 연구한다. 거대한 경사로를 만들어 석재를 끌어올렸다는 이론, 내부에 나선형 경사로를 이용했다는 이론, 모래에 물을 적시면 마찰력 감소로 돌을 쉽게 옮겼다는 이론(실제로 벽화에 있음), 석회와 모래를 혼합하여 콘크리트를 제조하여 사각형으로 성형했다는 이론, 그리고 외계인 개입설이다. 이 모든 이론들은 그저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경사로+물리학 원리가 아직은 가장 이해가 되긴 한다. 하지만 필자는 외계인 개입설이 구미가 당긴다. 


앞서 언급했듯 대피라미드는 정교하다. 무척 정교하다. 대피라미드는 높이가 146.6m와 밑변이 230.4m이다. 대피라미드의 4면의 면적을 밑변의 면적으로 나누면 원주율 파이(3.1416)값에 가까운 숫자가 나온다. 왜 4면의 면적을 밑변 면적으로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3.14 값이 나온다니 신기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이값을 이해한 걸까?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북쪽을 향해 배열되어 있다. 심지어 오리온자리의 벨트와 기자 피라미드의 배치가 일치한다는 주장도 있다. 내부의 왕의 방과 왕비의 방의 공기 통로가 특정한 별을 향해 뚫려있다. 남쪽은 오리온자리, 북쪽은 북극성을 향해있다. 단순히 왕을 모신 곳이 아니라 별자리를 보는 천문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피라미드 내부에는 발견되지 않은 방이 있다. 왕의 무덤이라 하는데, 아직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 탐험이 안된 방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왕의 무덤이 아니라면 피라미드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일까? 피라미드 내부에서 강한 전자기장이 측정되어 일종의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에너지를 전송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천문학적 수학적 원리가 반영된 구조물로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만들기 쉽지 않다. 


기자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저주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 늘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무덤에는 함정과 저주가 늘 따라다닌다. 왕의 무덤을 침범하는 자에게 신들의 저주가 내린다는 신념이다. 피라미드 내부 벽에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이 닥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실제로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면서 저주의 스토리는 시작된다. 발굴의 후원자였던 카나본 경은 무덤 개방 후, 모기 물린 상처가 감염되면서 사망하고 그의 개도 같은 날 죽는다. 그리고 발굴에 참여한 26명 중 13명이 사고사, 심장마비, 독살 등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정작 하워드 카터는 발굴 후 17년을 더 산다. 26명 중 사망한 13명 빼고 나머지 13명은 더 오래 산다. 이집트인들은 외국인들이 연구를 한다고 몰려와 왕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좋아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죽음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소문과 언론을 이용하여 왕의 저주를 만들어 낸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피라미드는 더 자세히 파헤쳐진다. 들어가지 않아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하고, 로봇만 들여보내 내부를 보기도 한다. 이때 저주에 대한 이론들이 밝혀지기도 한다. 피라미드의 내부는 수천 년간 밀폐되어 공기 중에 박테리아와 곰팡이들이 있고,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노출되면 병에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리고 무덤 안에는 방사성 물질과 독성 가스가 검출되기도 한다. 저주가 시작될 때는 원인을 몰랐지만 지금은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주를 믿는 사람들이 무덤에 들어가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이 유발될 수 있다고도 누군가 설명했다. 


투탕카멘 무덤 발굴 후, 이집트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이어졌다. 이집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을 했지만 영국은 무력으로 진압하며 사상자가 났고, 발굴이 진행되면서 이집트의 문화재들이 유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며, 이집트의 민족주의가 일어난다. 당시 왕실은 부패했고 권력 싸움으로 불안정했다. 경제적으로는 대공황과 맞물려 관광업이 위기를 맞으며 이집트의 재정은 더욱 악화된다. 결국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며 이집트 왕정시대는 막을 내린다. 아직도 사람들은 투탕카멘의 저주가 이집트를 찾아왔다고 믿고 있다. 


피라미드는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곳에 누운 왕은 영생, 혹은 불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피라미드가 수천 년을 버틸 수 있게 만든 것도 왕의 영혼이 영원히 존재하도록 만든 장치였다. 피라미드의 크기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면서도 죽음에 대한 인간의 유한성도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도 담고 있을지도...우주와 인간을 연결하고 인간 존재가 우주의 일부분임을 나타낸다.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최대로 모았고 그것이 피라미드로 세운 것이다. 


인간은 위대하지만 유한하며 죽음을 뛰어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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