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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나의애송시감상노트 11

by kacy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을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니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지금은 밤하늘에 별을 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이 살던 때는 아마 밤마다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었겠지요. 제가 어릴 적 만해도 밤에 은하수를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 시는 시인이 고향 북간도를 떠나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를 다니던 1941년에 쓰여젔다고 합니다. 그는 1917년 중국 만주의 명동촌이라는 곳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용정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이때는 일본이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세운 때로 사회가 한참 변화가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1938년 그는 고향을 떠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고향 만주에서 꽤 긴 21년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것입니다. 이 시는 그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즈음, 일본으로 가기 전에 쓰여진 시입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을 시인은 별 하나하나에 지금은 볼 수 없는 고향의 옛 친구들, 이름이 하나하나 기억나는 중국 소녀들, 그리고 가난한 이웃 사람들을 떠 올려 봅니다. 고향을 떠난지 3년여, 어릴 적 그들과의 추억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여기서 시인이 별을 통해서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별 또한 먼 고향처럼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그러나 아름다운 고향의 그들과 동일한 그 어떤 숭고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이름들, 그런데 그전에 여기서 갑자기 비둘기, 강아지, 토끼 등도 떠올립니다. 그냥 우리 주변의 친근한 그런 동물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런 동물들 이름에 바로 외국 시인의 이름을 연이어 쓴 것으로 보아 혹시 이 동물 이름이, 자기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시인의 이름을 바로 쓰기가 거북해서 대신 이렇게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시인이 좋아했던 시인으로는 백석, 정지용, 이상, 이육사 등이 있습니다. 특히 그는 정지용 시인을 좋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별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움’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움’의 가장 큰 부분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지요.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이렇게 어머니 뒤에 쉼표를 붙여 놓고, 그리움에 목이 메인 듯, 한번 숨을 쉬었다 다시 어머니를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연에서 그는 언덕 위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가 흙으로 덮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부끄러운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시인은 이때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할 때입니다. 그는 졸업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상황에서 그의 이름자를 흙 위에 써보고 이 이름을 고처야만 하는 현실에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을까요.

그 심정을 풀벌레를 빌어 슬퍼한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의 먼 훗날의 그리움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 봄이 오면 그의 이름 자가 묻힌 언덕에 풀이 무성할 것이라구요. 지금 일제하에서 자기 이름도 쓸 수 없는 겨울 같은 냉혹한 때이지만 언젠가 이런 굴레가 벗겨질 날, 봄날이 올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마지막 연은 그의 운명을 예언한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는 생전에는 시집 한 권 내지도 못했지만, 그의 사후에서야 시집이 나오고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자랑스러운, 영원히 잊지 못할 시인으로 남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이름 위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하듯 우리의 사랑이 그 이름 위에 무성하니까요.

그런데 이 마지막 연은 원래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시를 지으면 항상 같이 지내던 후배 친구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가 뭔가 마지막이 아쉽다고 말하자 이 마지막 연을 추가했다고 전해집니다.


윤동주 시인은 1945년 28세의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病死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젊은 시인으로 남으며.

다시 한번 ‘별 헤는 밤을’ 마음속으로 낭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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