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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10

by kacy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소월의 시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친근한 시중의 하나입니다. 恨이 유별나게 많다는 한국인에게 마음으로 잘 공감되는 시 아닐까요?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마 감정 전달이 잘 안될 것 같은 그런 시입니다.

사랑하던 임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나를 보기가 역겹다고 한다면? ‘나 보기가 싫어서 가실 때에는’ 이 아니라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하고, 님의 나에 대한 최고도의 미움을 표현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런 일이 남녀 간의 사랑에서 흔히 발생하는 슬픈 현실 아닌가요.

그렇지요. 이런 사람은 아무말 안하고 그냥 보내 버리는 것 밖에 무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여기서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도무지 말로 할 수 없는 ‘내’ 속에 있는 그 섭섭함과 그 눈물과 원망을 그 사람에게 눈으로 보여 주고자 합니다. 영변 약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뿌린답니다. 그분이 가시는 길 위에다가 말입니다. 그리고 갈려면 밟고 가라고요. 그런데 그냥 밟고 가라지 않고 ‘사뿐이 즈려밟고' 가라고합니다. 여기서 ’즈려밟고‘는 어떻게 밟는 건가요? 가볍게 밟으라는 뜻이라야 앞의 ’사뿐이‘와 잘 연결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꽉 디디고 밟는다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두 번째 뜻이 도리어 ’나‘의 속마음과 통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뿐이 그리고 꽉 밟고 가려면, 그야말로 스텝이 꼬여서 잘 가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아리랑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가 생각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국민시인으로 우리도 잘 아는 윌리엄 예이츠(1865-1939)가 그가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보낸 시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 꿈 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하늘의 천‘ 부분.


이 시는 젊은 예이츠가 한눈에 반한 여인에게 사랑의 고백처럼 쓴 시입니다. 여기서도 놓인 꿈을 ’사뿐히 밟으소서(Tread softly)’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떠나는 것은 나의 꿈을 밟는 것과 같다는 뜻인가요.


‘진달래꽃’의 ‘놓인 꽃잎’은 화자의 꿈 뿐 아니라 '나'를 밟고 가는 것과 다를 것 없겠지요.

진달래꽃은 참 연하고 부드러운, 주로 산속, 특히 소나무가 많은 산, 양지쪽에 수줍은 듯 피는 꽃입니다. 요새는 아파트 단지마다 영산홍은 많이 심겨 저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도시에서 진달래꽃은 보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진달래는 낯을, 아니 땅을 많이 가리는 나무입니다. 이 진달래꽃을 잘 묘사하고 있는 시를 하나 감상하실까요.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냘픈 꽃을,

이른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루아침에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을(중략)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중략)

박팔양 ’너무도 슬픈 사실‘ 부분


이렇게 진달래꽃은 어느 산골의 연약하고 수줍은, 가시는 임에게 직접 할 말도 못하는 그런 여인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보면 이 시의 분위기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마지막 연에서 ‘나’는 결코 눈물 따위는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은 진달래꽃도 밟고 결국은 갈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나’는 그 님이 떠나 버린 뒤, 뒷산 진달래꽃을 부둥켜 앉고 평평 눈물을 흘릴 것임을. 두 눈이 진달래꽃처럼 붉어질 때까지 말입니다.

여기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의 표현은 ‘아니’라는 말을 눈물 앞에 써서 그 부정의 의미가 훨씬 강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한 음률적으로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시인 김소월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고 영변도 평북에 있읍니다. 지금 핵 개발한다고 온통 산을 다 파헤쳐 놓았겠지요. 옛날 藥山의 진달래꽃은 봄이 오면 그 바위산을 덮어, 온 산이 불타는 듯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럴런지요. 아마 지금도 봄이면 진달래꽃은 또 어김없이 필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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