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스타의 빈자리

by 강소록

우리 집에선 내가 119 전문가이다.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득달같이 전화해서 119 구급대원을 재빨리 불러 모시는 데는 기막히게 빠른 수준급 도사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집에 혼자 있을 때, 화장실 세면대에다 평소같이 발을 올려놓고 닦는데, 난데없이 세면기가 욕실 바닥으로 떨어져 와장창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는 파편 조각을 피해 껑충 뛰었지만, 뛰었다가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아찔한 통증을 느꼈다.

발을 보니까 발 전체가 흥건하게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지혈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걸려있던 수건을 낚아채 발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는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서 전화기를 향해 기어갔다.

왠지 발을 심장 위쪽으로 향해야 할 것 같아서 , 이상한 요가 동작 같은 모습을 한 채로 전화를 했다.


" 여기 ㅇㅇ동 1068번지 101호인데요.

발을 심하게 베어서 피가 많이 나요. 빨리 와 주세요. "


한 십 분쯤 지났을까. 119 구급대원 두 명이 집에 왔다.

세면기가 떨어져 파편에 베어 다쳤다고 하니, 아, 글쎄 단순한 자상 같아 보이니 지혈하고 병원 가서 꿰매면 된대나.

그러면서 나보고 걸을 수 있겠냐고 했다. 가뜩이나 엄살이 구단인 나한테 말이다.


결국 들것에 실려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말이 발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해야 하고, 입원도 일주일 동안은 걸릴 거라고 했다.


거봐 거봐, 내가 심하댔잖아. 근데, 일주일 동안 식구들은 나 없이 어떻게 하나.

맨날 컵라면이나 자장면에, 가끔은 배달의 민족임을 증명하는 거 아닐까.

걱정과 안쓰러움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 혼자 애들 라이딩을 해 주려면 밤에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지 궁금했다.


아니야. 내가 부재중일 때 내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는 거야.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고 지구는 돌아가니까.

남편은 당시 둘째가 아직 초등학생이라서 돌보느라 병원에 한 번만 와보고 퇴원할 때만 왔다.


힝~ 조선족 간병인이 가족은 아닌데, 간병인이 모든 보살핌을 해 주고, 일주일 내내 얼굴 맞대고 얘기할 가족처럼 되어 주냐고.


그때 나는 건강관리를 잘해서 남편의 간병만큼은 직접 해 줄 거라고 마음먹었다.

그 얘기를 나중에 하니까 아주 남편이 드러눕기를 기다리느냐고 팩 하며 토라졌다. 말의 중심을 읽어야지 이 양반아.



퇴원을 해서 집에 왔는데, 집이 그런대로 깨끗했다.


남편이 꽤나 수고한 흔적이 보였다.

난 남편에게 칭찬과 미안함을 비치려는 말을 하려는데, 남편이 이러는 것이었다.


" 너 없이도 하나 불편한 거 없이 잘 지냈어. 애들은 걱정 안 했지?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으니까."


'뭐라? 나 없이도 잘 살아? 난 병원에서 잠도 잘 못 자고 휠체어 생활하며 죽도록 고생했는데.'


남편의 말에 화도 났지만, 우선은 너무 서운했다.

나.쁜.인.간.

남편은 주말이라 애들을 서둘러 준비시켜 나갈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 여보, 수술 후엔 수육고기를 먹는 게 좋아. 탕도 사줄 테니까 나가자."


나는 눈물울 찔끔거리던 것을 얼른 훔치고,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는 목발을 짚고 애들과 차에 조심해서 올라탔다.


사실 수육과 탕은 남편과 애들이 훨씬 더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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