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面長)과 면장(面墻)
"알아야 면장을 하지"는 아주 실용적인 속담으로 직역하면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기본적인 일(예: 면장 노릇)도 할 수 있다"는 말로, “기본은 알고 행동해야 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쓰임새도 꽤 다양해서, 뭘 잘 모르는 사람이 엉뚱한 소리를 할 때, 기본 상식도 없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약간은 짓궂게, 하지만 뼈 있는 말로 툭 던지기 좋은 표현이라고 인공지능은 설명하고 나도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면장이지 군수나 선생이 아니고.라는 의문은 있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한자 공부하는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마침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의 유래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인 즉 여기서 면장은 동장(洞長) 위에 면장(面長)이 아니라 담장을 마주한다는 면장(面墻)이라는 거다. 그 유래는 공자님이 자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언급된 말로 “네가 커서 담장을 마주한 것과 같은 답답함을 피하려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에서 온 속담으로 한자로 정확히 쓰면 “알아야 면 면장(免 面墻)을 하지.” 로 한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고장 나서 카센터에 가면 어디가 고장 나서 갈아야 하고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설명에, 그 진단이 정직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른 카센터로도 가 보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 보지만 내가 모르니 그 답답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동차의 구조나 정비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고 하는 김에 자격증을 따 보자고 생각했다. 자격을 따면 좋고 못 돼도 카센터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마침 학교에서 자체 연수 계획으로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학원에 다니면 학원비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므로 방학 중 학원에 등록하여 자동차 구조와 정비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전공한 물리와 유사한 과목이라 이론은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가 되었다. 문제는 실기였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각종 측정기기를 능숙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오랜동안의 실습으로 가능했다. 더구나 실습 시험을 칠 때 각종 공구는 본인이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일반적인 공구를 모두 가지고 갔지만 분해된 엔진에서 어떤 공구로 어떤 작업을 요구하는지 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다 끝났다. 실기 점수는 100점 만점에 9점이 나왔다. 30점만 나왔어도 재시험에 도전했을 것이다.
부동산 계약을 할 때마다 복비는 얼마인지, 계약서에 필요한 서류는 어떤 건지, 용적률과 건폐율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많으니 답답했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퇴직하면 어디에 기댈 자격증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부동산 이야기할 때 느끼던 답답함을 해결할 겸, 국민 자격증이라는 공인 중개사 시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필요한 책을 택배로 받아 보고서 만만한 공부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만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시작했다. 출근 전 EBS 아침 강의를 시작으로 틈틈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면서 시작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격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함은 많이 해소되는 느낌(免 面墻)이었다.
1차에는 가장 어렵고 책도 두꺼운 민법과 부동산학 개론 두 과목이고 2차에는 주택법, 건축법, 등기법, 공인 중개사법, 국토계획법 등 잘잘한 과목 5개인데 이를 한꺼번에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 시험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국토부장관이 부동산 정책에 이렇게 강력한 사람이었어?’ 하는 거다. 시험장에서 보니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듯했다. “저 노인네가 지금 자격을 따서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시선도 있었다.
1차와 2차 시험 모두가 객관식 5지 선다형으로 2년에 걸쳐 1차 2차 순차적으로 통과해 서울시장으로부터 자격증을 받았다. 퇴직 후 1년이 지나 개업을 해볼까 하여 개업하기 위해 요구되는 실무교육을 받기 위해 실무 교육장에 갔다. 강사는 공인 중개사 협회에서 파견되는 현직 개업 공인중개사다. 개업하면 업계의 경쟁자를 늘리는 것이므로 긍정적인 조언을 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가 퇴직 공직자라는 것과 연금으로 먹고살 걱정이 없다는 것을 묻고 개업하면 생각지 못한 여러 어려움이 올 것이라는 것을 조언한다.
우선 주위의 다른 개업 중개사들이 경계하고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심지어 왕따 시킬 가능성과 그러면 수익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 든 남자가 낮에 남의 집을 보러 오는 것을 꺼리는 주부들도 많고, 자기 경험으로 교사 출신 중개사는 3년 안에 80%가 문을 닫는다는 거다. 그래도 군인보다는 낫다. 군인은 90%가 망한단다. 그래도 굳이 하고 싶으면 동네에 있는 교회, 성당도 나가고 경로당이나 지역 커뮤니티에 기여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것 같고 아내도 별로 도와줄 생각이 없어 개업은 포기했다. 그래서 아내의 장롱 운전 면허증처럼 나도 장롱 공인 중개사 자격증 소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