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또라이

행복한 또라이

by 보라

비가 내린다. 비가 와서 신나는 건 나뿐이다.

매장은 배달 나가야 할 물건과 카트, 사람들이 뒤엉켜 난장판이다. 이런 날도 매장에 나와 일해야 한다. 처음 면접볼 때는 명절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매장일을 도와주면 된다고 했지만 그건 말뿐이었다. 하지만 밖에 나와서 일하는 게 힘들긴 해도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재미있다.

비구경, 사람구경 하며 일을 돕고 있는데 배달직원들과 점장님의 실랑이가 들린다. 배달직원들은 비가 와서 배달해야 할 물건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고, 점장님은 거래처에서 빨리 배달 안 해준다고 난리라며 서두르라고 한다.


“비가 오니 무 한 개 가져다 달라는 곳도 있어. 지들은 비 맞기 싫어서 시키면서, 젖은 내가 가면 물 떨어진다고 주방 뒤쪽으로 들어오래.”


비 맞아가며 열심히 배달을 해도 배달직원들은 손님이 아니기에 거래처에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주차도 주차장에 하지 못하고 주입구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다. 그러면서 이런 날은 빨리 안 온다고 성화까지 부리니 배달직원들도 화가 날만하다. 점장님과 실랑이하는 걸 듣는데 낯익은 가게 이름이 들렸다. 전에 날 위해 한마디 해준 사장님네 가게다.


“OO도 배달 있어요?”

“응. 근데 거긴 노선이 달라서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해. 급하다고 하는데, 어쩌지.”

“제가 갈게요, 제 차로 얼른 가면 한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어요.”


내가 간다는 말에 점장님은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지금까지 배달은 배달직원외에는 누구도 간 적이 없었다. 아니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무직인 내가 간다고 하니 놀랄 만도 하다.


“고맙긴 한데, 거기가 어딘지 알아?”

“아니요, 내비 찍고 가죠뭐. 걱정 마세요. 운전은 잘해요.”


우리 이야기를 듣던 배달직원이 고맙다며 서둘러 나에게 배달물건이 담긴 카트를 밀어준다. 뭐 이 정도면 경차인 내 차에도 충분히 실린다. 다른 직원들의 걱정 어린 눈길을 뒤로한 채 물건을 싣고 출발했다.


비 오는 날 바닷가 둘레길을 달리니 정말 좋다.

비가 와서 바다도 신이 났는지 우릉우릉하다. 파도도 함께 너울거린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OO에 도착했다. 흥에 겨워 그만 주방뒷문으로 들러가야 한다는 걸 깜박했다. 당당히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르바이트생인듯한 사람이 놀라서 손짓을 한다.


“여기 말고 주방으로요.”

“아, 네. 제가 깜박했네요. 죄송해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주방에서 사장님이 나오셨다.


“아이고, 어떻게 오셨어요. 이거 주려고 직접 오신 거예요?”

“네, 배달이 밀려서요. 급하다고 하셨잖아요. 전에 제가 신세 졌으니 갚아야죠.”


환하게 웃는 날 보고 사장님도 껄껄 웃으신다. 그리곤 잠시 앉아서 기다리란다. 알바생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더니 이내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알바생은 따뜻한 커피를 가져다주며 흘깃 바라본다. 두리번거리며 가게 안을 구경하는 내가 이상했나 보다. 조금 후 수제버거를 들고 사장님이 나오셨다.


“이거 우리 가게에서 제일 유명한 버거예요. 한번 드셔보세요.”

“정말요? 와, 말로만 듣던걸 먹어보네요.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한 손에 버거,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매장으로 돌아왔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은주언니가 날 찾는다.


“너 배달도 하냐”

“바쁘다길래 다녀왔어요. 거기 사장님께 신세 진 것도 있고 해서요. 이거, 거기 사장님이 주신 건데 같이 먹어요.”

커피를 종이컵에 반 따르고 버거도 잘라서 언니에게 내밀었다.


“너도 참, 사무실에 곱게 앉아있어도 될 애가 이 비를 맞고 쏘다니냐.”

언니는 뭐라 하면서도 눈은 웃고 있다. 그러면서 거기 버거가 맛은 있다며 다음에 같이 가잔다.




그의 시선


그녀가 안 보인다. 사무실에도 매장에도 없다. 괜스레 물건을 보는 척하며 시간을 끌다 보니 점장이 온다.

“사장님, 아직 안 가셨어요? 뭐 필요하신 거라도.”

“아, 아니요. 좀 둘러보다 가려고요. 비가 와서 매장이 바쁜가 보네요.”

“네, 말도 마세요. 배달이 밀려서 난리예요. 오죽하면 경리까지 배달 나갔어요.”

“네? 경리가 배달도 나가나요?”

“아, 시키지 않았는데 본인이 가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했죠. 지금 찬밥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서요.”

“그래도 배달직원도 힘들어하는 일을 여자분이 하기 힘들지 않겠어요.”

걱정하는 나의 말에 점장이 멋쩍어하며 그래도 배달 물건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잠시 후 그녀가 보인다.

“다녀왔습니다.”

뭐가 기분 좋은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웃으며 인사한다. 그리곤 나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이내 사라진다. 좋은 일이 있었는지 뒷모습이 신나 보인다.


“하여간, 참 독특해.”

점장이 그녀가 사라지자 한마디 한다. 다들 배달 좀 나가라고 하면 입이 한 다발씩 나오고 이리 빼고 저리 빼는데 제는 본인이 가겠다고 하더니 신이 나서 왔다고 정말 이상하단다.

“또라이잖아요.”

내 말에 우리 둘 다 사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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