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또라이
바나나우유할머니가 얼마 전부터 안 보인다. 매장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안 오신 지 열흘정도 되었단다. 적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 오시는 분이 여적 깜깜무소식이면 무슨 일이 있는 거다. 매장 입구에서 서성이다가 할머니와 친분이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 혹시 여기서 바나나우유 드시던 할머니 아세요?”
“아, 그 할머니, 얼마 전에 갔어.”
“네? 어디로요. 무슨 일이 있나요?”
“여기 있다 집에 가던 길에 차사고가 났지 뭐야. 그날 난리도 아니었어. 벌건 대낮인데 길을 건너는 양반을 운전하는 사람이 못 보고 그냥 치고 지나가버렸대. 아이고,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어르신은 한동안 계속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셨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나와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 한순간에 사라지다니. 그것도 모르고 난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한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우리의 삶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더 서글펐다. 할머니는 그렇게 인연을 끈을 놓고 길을 건너셨다.
얼마의 시간 동안 난 그 의자를 치우지 못했다. 할머니가 여기서 누렸던 시간, 나와의 추억을 의자만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의자가 사라지면 할머니의 존재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마음먹고 할머니의 의자를 치우던 날, 괜스레 의자를 들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버리기에는 마음이 쓰이고 놔두자니 볼 때마다 생각이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은주언니가 날 향해 손짓한다.
“그거 이리 가져와.”
“언니가 쓰시게요. 다들 죽은 사람꺼라 재수 없다고 버리라고 하는데.....”
“재수 없기는, 지들이 더 재수 없지. 산 사람이 문제지 죽은 사람은 해가 없어. 내가 야채 다듬고 소분할 때 쓰면 되니까 저기 소분실에 놔둬.”
마음 써주는 은주언니가 고마워서 언니가 들고 있던 야채쓰레기를 들고 매장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를 버리고 막 돌아서는데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에서 울어댄다. 이제 막 독립한 듯한 아기 고양이는 며칠 못 먹었는지 털도 까칠하고 눈곱도 껴있다. 불쌍하지만 내가 키울 형편은 안되니 마음 주지 말아야 한다. 돌아서서 사무실에 와서도 계속 아기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혹시나 하고 애완동물코너에서 츄르 하나를 사서 밖에 나가보니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울고 있다.
“그래, 이건 그냥 고양이 집사로서 못 본 척 지나갈 수 없어서야. 절대 마음 주는 건 아니야. 간택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양이한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츄르를 내밀자 한참을 빙빙 돌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와 먹는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나름 귀엽게 생겼다.
어느새 아기고양이는 야옹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내가 수시로 드나들며 먹을 거를 챙겨주자 동물 좋아하는 직원들도 나름 야옹이를 챙기며 돌보기 시작했다. 이젠 우리와 친해져서 마트 주변을 떠나지 않는 야옹이를 위해 집도 마련해 주었다. ‘야옹아’라고 부르면 다가와 몸을 가볍게 스친다. 꼬리를 바짝 들고 그르릉 거린다. 비록 마트 주차장 한 구석이긴 해도 길고양이를 키우는 건 안된다고 하던 점장님은 젊은 고객들이 우리 마트 마스코트라며 야옹이 사진을 SNS에 올리자 나름 홍보 효과가 있다며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주었다. 그렇게 우리와 야옹이의 인연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