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게 물어본 뒤 대답도 듣지 않고 처리하나요?

일못러에서 벗어나기

by 보이저

한참 일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4월에 집행할 교육비를 정리해서 알려달라는 기획팀 담당자 전화였다. 나는 전화를 끝내고 곧장 팀장님께 메시지를 보낸다.


"팀장님, 기획팀에서 우리팀 4월 교육비를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하는데,
보내도 될까요?"


팀장님은 회의 중이신지 아무 답변이 오지 않는다. 30분, 1시간이 지나고 기획팀에서는 자료를 얼른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팀장님을 참조로 해서 자료를 기획팀에 보냈다. 조금 뒤 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아니 나한테 보내도 되는지 물어봐 놓고 대답도 안 듣고 그냥 보내버렸네?
그럴거면 나한테 왜 물어본거야?"



나는 일의 순서를 놓쳤던 것이다. 급하다는 데에만 꽂혀서 팀장님 대답도 듣지 않고 기획팀에 자료를 보냈던 것이다.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처리하는 유형



1. 취합 기간 전에 정리해서 보고해버리기


예를 들어 연말정산 서류 취합 기간인 경우, 보통 팀에서 한 명이 팀원 전체 서류를 취합받아 제출하게 된다. 이 때 취합 기간을 1월 20일까지로 지정하여 안내했는데, 다 제출했겠거니 해서 하루 전에 미리 제출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뒤늦게 수정사항이 생겨 1월 20일에 새로운 자료를 제출하려는 사람은 당황하게 된다. 마감 날짜를 공지했음에도 미리 처리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2. 어떻게 할지 문의했음에도 대답이 오기 전에 처리해버리기


앞서 소개한 것처럼 상대방 독촉이 있거나, 다른 일이 급해서 먼저 처리해버리면 이후에 대답하는 사람은 무시당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만일 내 예상과 다른 대답이 온다면 일이 꼬이게 된다.




왜 상대방 대답이 오기 전에 내 멋대로 행동했을까?


상대방에게 물어봤으면 대답을 기다리는게 맞다. 그러나 나처럼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냥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왜 그런 것일까?



1. 물어본 것이 그냥 요식행위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대답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다. 이미 나는 어떻게 할지 결론을 다 내려놓고 있다. 팀장에게 물어본 것은 회사 내 절차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런것 뿐, 답이 궁금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한 이후,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던 이스마엘이란 사람은 총독을 살해한 후 바벨론의 처벌이 두려워 이집트로 망명하려고 한다. 이 때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집트로 피신해도 되는지 하나님께 뜻을 물어봐달라고 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가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이스마엘에게 전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예레미야를 사기꾼이라고 오히려 몰아세웠다. 그리고 예레미야까지 강제로 끌고 이집트로 망명해버렸다. 이미 이집트로 가기로 결론을 다 냈던 것이다. 예레미야에게 물어본 건 자기 주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었다.


직장에서도 이런 경우가 참 많다. 팀장이 이 업무는 최과장에게 컨펌 받고 진행하라고 하면 마지못해 최과장에게 한 번 보여준다. 제대로 된 피드백을 당연히 받기 힘들다. 어떨 때는 그냥 건너 뛰기도 한다.




2. 마음만 앞서기 때문이다.


일의 순서를 생각하지 못한다. 마음만 앞선다. 자기가 물어봐 놓고 정작 대답을 받지 못한 채 알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부탁한 것은 꼭 들어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 이런 모습을 보이기 쉽다. 마음만 앞서는 것이다.




3.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급자와 관계가 나쁘기 때문이다.


상급자와 편한 관계이면 전화로 손쉽게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런 관계가 아니다 보니 팀장님이 기분 좋아보일 때, 바쁘지 않을 때 등 온갖 환경조건을 다 신경쓰게 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결국 시간에 쫓겨 급하게 물어보게 된다.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급하게 물어보니 팀장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자 승인 없이 처리했을 때의 문제점


회사에서의 의사결정은 보고를 기반으로 한다. 하이라키(Hierarchy)라고 불리는 피라미드형 계층구조에서 보고 없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보고라는 것은 책임을 윗사람에게 지우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당신이 했으니 그 책임도 지게 되는 것이다. 이건 비겁한게 아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그런데 보고를 안하고 의사결정 없이 일을 처리해 버리면 그 책임이 다 나에게 지워지게 된다. 보고 절차 누락은 일단 둘째 치더라도 혼자서 그 책임을 다 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결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방법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나도 그렇고 주변을 보면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회사 뿐 아니라 가정이나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의견을 물어본 것은 반드시 응답 후에 처리하자


아무리 급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감아서 바느질을 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독촉하건 말건 일단 기다리라고 하자. 내가 타이밍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정말 급한 일이라면 팀장에게 바로 연락이 갔을 것이다. 회사 고위 임원이 급하게 찾는 수준의 일이라면 그걸 상무나 팀장에게 직접 연락했지 왜 일개 팀원인 나에게 연락했겠는가? 그러니 죄책감 갖지 말고 편하게 생각하자.




2. 내 멋대로 처리하는 습관을 버리자


집에서 쓰는 물건인데도 쓰레기로 내다 버린 적은 없는가? 소원 들어주시면 큰 돈 헌금하겠다고 서원 기도하고 지키지 못해 쩔쩔맨 적은 없는가? 아이랑 놀이동산 가겠다고 큰 소리 뻥뻥 쳐놓고 알고보니 그 날 집안 결혼식이 있어서 약속을 못지켜 아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적은 없었는가?


평소에 이걸 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물론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관련된 것이라면 꼭 먼저 물어보고서 결정하는 습관을 갖자.




마무리하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 뜻대로 살고 싶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승낙을 받은 것은 내 자존심이 상하고 밑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라는 계층구조는 반드시 의사결정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시계 속 톱니 하나가 제 멋대로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그 시계는 엉망으로 시간을 가리키게 된다. 시계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항상 어디에서나 먼저 물어보고 일을 진행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그게 회사 일에까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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