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극복하기
임 대리는 드디어 AI 기반 업무 프로세스 개선안 보고서를 다 만들었다. 휴..이거 만드느라 AI 관련 유튜브에 책에 블로그에.. 30개 넘게 찾아본 것 같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임 대리도 이제는 풍월은 읊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성스럽게 만든 보고서를 팀장님께 이메일로 보내기 직전이다.
"아! 오늘 오후에 팀장님 외근이시지? 그럼 이 것도 같이 보고해야겠다.
3분기 인건비 배부현황도 겸사겸사 첨부해서 이메일로 같이 보고드려야겠다. 한 큐에 다 해결해야지!
잠시 후 팀장님이 나를 부른다.
"인건비 배부현황 이거 검토 더 해야한다고 잠시 대기하라고 했잖아. 이걸 지금 나한테 보낸 이유가 뭐지?"
에이씨..AI 프로세스 보고서만 보냈으면 되는 것을 쓸데없이 내가 욕심부려서 망하고 말았다.
굳이 안 보내도 되는 인건비 현황은 뭐하러 같이 보냈을까? 후회가 파도처럼 밀어 닥친다.
'사족(蛇足)' 이라는 단어가 있다. 마지막에 그림을 돋보이게 하고자 뱀의 다리를 더 그려넣어 그림을 다 망친다는 말이다. 우리는 말할 때 이 사족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안양 평촌에 사는 나는 지역 축구팀인 FC안양을 응원한다. FC안양 팀 구단주인 안양시장이 얼마 전에 기자회견을 열고 작심한듯 잦은 심판 판정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축구팬들은 속이 시원했다. 평소에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누구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자회견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는 이상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심판 판정이 돈 많은 기업구단 중심으로 유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부터다. 이 때부터 기업구단 팬, 시민구단 팬 간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불필요한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합리적인 근거 없이 갑자기 제기한 새로운 이슈는 심판 판정 제대로 하라는 기존의 기자회견 취지를 퇴색하게 만들었다. 심판 판정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끝났으면 좋았는데, 거기서 더 나가는 바람에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더 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가 있을까?
회사에서도 A만 보고하면 되는데 굳이 B까지 보고하려다 탈이 나는 경우가 있다. 빨리 쳐내고 싶다는 욕심에 무리수를 두다 B는 물론 A까지 도매금으로 망치는 것이다.
하나만 쓰면 될 걸 굳이 안 써도 되는 내용을 썼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있다.
"제 3회 정기총회는 한 주 연기 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아직 자료가 다 취합되지 않아~"
총회가 연기되었다는 사실만 쓰면 되는데, 굳이 팀의 치부까지 드러내면서 팀의 대외 이미지만 나쁘게 만들고 말았다.
PT를 할 때도 이런 멘트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준비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제가 말주변이 부족해서"
"제가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어제 과음을 해서 몸 상태가 별로입니다"
겸손의 의미로 하는 말인 것은 알겠는데,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데 전문성 없는 발표를 신뢰하고 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친구 사이에서도 이런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칭찬이 과해서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이다.
"너 이번에 대기업 들어갔더라? 진짜 축하해!"
"고마워. 내가 한턱 쏠께"
"학창시절에는 내가 더 공부 잘했었는데. 이렇게 인생이 바뀌다니. 사람일은 몰라"
이건 칭찬일까? 빈정거림일까? 그냥 앞문장에서 끝나면 될 것을 굳이 한 마디 더 했다가 칭찬의 말까지 다 파묻혀 버렸다.
축구학원을 다니는 첫째 아들이 시합에서 두 골을 넣었다. 신이 난 아빠는 아들을 칭찬한다.
"역시! 너는 아빠의 운동신경을 빼닮았다니까?"
"내가 축구 좀 하지"
"근데 상대팀에 3골 넣고 헤트트릭한 애는 누구야?"
두 골 넣은 것에 대해 칭찬하고 끝내면 되는데, 상대팀에 3골을 넣던 4골을 넣던 그 아이가 누군지 아는게 뭐가 중요한가? 괜히 말을 더해서 아이의 기분만 상하고 말았다.
미국의 미디어 전략가 프랭크 런츠(Frank Luntz)는 '언어 자살'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불필요한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마치 축구에서 수비수가 막아보려는 욕심에 괜히 발 잘못 뻗었다가 자기 골대로 공을 차버리는 것과 같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한다. 자기가 관심이 있거나 많이 아는 주제가 있으면 계속 말하고 싶어한다. 미안한 감정이 들 때면 내가 말을 더 해야 상대방에게 더 잘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축하할 때도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언어 자살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짧고 굵게 하면 될 것을 포도송이에 포도알 덕지덕지 붙이는 것처럼 계속 말을 붙여댄다. 결국 그 포도송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줄기에서 떨어지게 된다.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더 하고 싶을 때는 일단 멈추자. 장담하건대 80% 이상은 더 말하지 않은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사람은 말을 안해서가 아니라 말을 더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훨신 많다.
(잠언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