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마주한 마음
퇴근 무렵, 친한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비 오는 오후를 낭만으로 만들어 줄 플루트 독주회.
나는 흔쾌히 응 했다. 가을의 끝자락에 듣는 클래식은 언제나 좋다. 차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운타운으로 향하고 있었다.
각자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고,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그녀가 불쑥 물었다.
“언니, 언제 가장 슬퍼?”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문득, 어느 순간에.”
그녀는 얼마 전 Psychotherapist 상담을 시작했다고 했다.
Depression 진단을 받았다는 말에, 나는 잠시 숨을 고르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무언가를 털어놓고 싶은 듯, 그러나 아직은 닫혀 있는 마음.
나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말을 이을 때까지.
공연장은 작고 고요했다. 플루티스트의 첫 선율이 시작되자, 공간은 어느새 온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피아노곡 하나를 소개하며 말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후, 요동치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작곡한 곡이라고. 그 고백이 끝나자, 슬픔과 상실, 애틋함과 고통이 뒤섞인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그 음악은 눈물 같았다. 내 안의 오래된 감정들이, 소리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음악은 내 온몸을 적셨다.
그 순간,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랑눈 내리던 겨울, 젖은 옷을 피하려 커다란 우산 하나를 함께 썼던 그날. 앙상한 나무들이 늘어선 길 위에서 나누던 대화가 되살아났다.
왜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을까.
아마도 아직 놓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 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내 마음이 아직 끝맺지 못한 감정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인연이 끝났음을 알면서도, 나는 그때의 감정을 붙잡고 있었다. 그 음악은 그 미묘한 간극을 건드려, 내가 왜 그 감정을 놓지 못했는지 깨닫게 했다.
우리는 누구나, 지나간 순간과 감정을 놓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다. 빗물처럼 스며들게 두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끝난 인연 앞에서 머뭇거린다.
이성은 ‘끝’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계속’을 원한다.
그녀의 음악이 내게 말했다.
‘흘려보내라고, 이제는 놓아주라고.’
놓는다는 건 잊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의 나를 기꺼이 품어주는 일이다. 언젠가 그 장면이 아픔이 아닌 온전한 이해로 다가오도록 기꺼이 기다려주는 일이다.
이 경험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감정의 순환이다. 진정한 놓음 속에는 회복과 성장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다.
피아노의 마지막 음이 사라질 즈음, 내 마음속을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천천히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