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위의 유쾌한 유령들
“곧 할로윈이 다가옵니다.”
라디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왜 할로윈에 열광할까. 단 하루, ‘나’를 감추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일. 그 자유와 해방의 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캐나다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온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이번엔 마녀로 갈까? 아니면 영화 속 캐릭터?”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때 ‘겨울왕국’이 인기를 끌던 해, 하늘색 드레스와 반짝이는 망토를 두른 ‘엘사’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유행했을 때는 초록색 트레이닝복과 핑크색 점프슈트가 할로윈의 상징처럼 번졌다.
이 날은 화제작과 트렌드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패션의 장’이 된다.
어느 날 동료가 물었다.
“Soo, 너는 어떤 코스튬을 선택했어? 나한테만 살짝 알려주면 안 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비밀인데… Valentina!”
퇴근 후 산책길에 오르며 검색창에 ‘올해 코스튬’을 쳤다. 가장 많이 검색된 코스튬은 ‘K-pop 데몬 헌터스’의 루미.
역시 K-pop의 인기는 여전하다. 나는 문득 보라색 머리로 변신한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도파민이 솟는다.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하는 동안, 이미 케이헌터 루미가 되어 동료들과 사진을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머릿속은 온통 코스튬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잔디 위에는 해골과 호박으로 꾸며진 정원이 마치 작은 무대처럼 펼쳐져 있었다.
집집마다 꾸민 핼러윈 장식들이 거리를 창의적인 전시장으로 바꿔 놓았다. 캐나다에서 10월 내내 볼 수 있는 이 풍경은, 하나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마녀, 해골, 무덤, 유령들이 무섭기는커녕 밤거리를 유쾌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이 특별한 장식을 보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도 퇴근 후 산책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조용하고 느린 걸음으로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해가 지자 불빛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캐나다의 10월 마지막 날, 사람들은 귀신 분장을 하고 “Trick or Treat”을 외친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이 날만큼은 '다른 나'로 살고 싶다. 평소 소심한 모습을 거두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변해 숨겨둔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한다. 코스튬을 통해 가장 솔직한 나를 만나는 하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