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은 다르다.
‘안녕’은 한 단어로 시작과 끝을 동시에 품는다.
처음의 안녕은 다정한 인사다. 그러나 마지막의 안녕은 결심의 말이다.
우리는 이 단어로 관계를 열지만, 다시 그 단어로 닫는다.
문제는 닫히지 않는 관계다. 많은 관계가 마침표 없이 쉼표로 남는다.
감정이 식었으나 말을 꺼내지 못하거나, 혹은 언젠가 다시 이어질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끝을 맺지 않은 관계는 시간 속에 붙잡혀 있을 뿐이다.
침묵은 배려가 아니라 방임이고, 애매함은 온전한 작별을 가로막는다.
‘안녕’이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에게 여전히 과제를 남긴다.
그것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다.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은 뇌를 괴롭힌다. 끝나지 않은 말은 늘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관계의 끝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시작이 그러하듯 끝에도 선언이 필요하다.
“오늘부터 1일”이 사랑의 시작을 알린다면, “오늘로 끝이야”는 관계를 정리하며 각자의 시간을 돌려준다.
뇌는 미완을 싫어한다.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관계는 뇌 속에서 계속 불이 켜진 채 남는다.
“모두 다 내 잘못일까?”, “혹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회로를 끊임없이 돈다.
그 피로는 삶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명확한 마침표는 상대의 뇌에 OFF 스위치를 만들어준다. 그제야 감정은 비로소 멈춘다.
후회와 자책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이 열린다.
그래서 끝을 분명히 하는 일은 냉정한 단절이 아니다. 상대가 쉴 수 있게 하는 따뜻한 배려다.
마침표를 찍는 일은 나를 향한 책임이기도 하다.
끝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도 미련을 남긴다.
“혹시 내가 너무 성급했나?”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까?” 이런 생각이 미련의 진창 속에서 발을 붙잡는다.
반면 “오늘로 끝”이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온전히 떠안는다.
그 용기가 관계를 완성시킨다. 끝을 맺는 순간, 관계는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명확한 마침표를 찍지 않고 도망치듯 쉼표로 남겨두는 것은 상대방의 회복할 권리를 빼앗는 행위다.
우리는 사랑해서 시작한 관계의 헤어짐에도 충분한 애도(哀悼)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별에도 존중이 필요한 이유다.
첫인사의 ‘안녕’은 만남을 여는 말이지만, 끝인사의 ‘안녕’은 서로를 놓아주는 말이다.
그 놓아줌을 통해 다음 인사를 맞이할 여백이 생긴다.
_ 그 마지막 안녕이 마음을 어렵게 하지 않기를,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