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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머문, 책 한 권

문장과 그림이 건네준 고요한 위로_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by Soo 수진

2025년의 여름

올해 여름은 낯설었다.
한국처럼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이 이어졌고, 건조한 기후 탓에 산불 소식도 잦았다. 나무 그늘 아래 있으면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던 캐나다의 여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며,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움이 매일의 공기를 채웠다.

캐나다에 살면서 이런 여름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늘 상쾌한 바람이 불고,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아침저녁 공기는 여름의 열기를 식어주는 계절. 하지만 이번 여름은 달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꿉꿉한 공기와 후덥지근한 열기. 마치 한국의 여름날 속에 잠시 옮겨온 듯했다.

짧지만 유난히 힘들게 느껴졌던 여름도 결국은 흘러갔다.
어느새 해는 일찍 저물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스며든다. 9월이 가까워지면서 기온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어제 아침에는 후디를 걸쳐 입었는데도 하루 종일 벗지 않아도 될 만큼 공기가 시원했다.

그 순간,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게 내가 알던 캐나다의 여름이지.”


시간은 참 빠르다. 2025년의 여름, 그리고 한 권의 책

한국에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025년도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유난히 생각이 많았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길수록 하루가 빠르게 흘렀고, 나에게 집중할수록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 속에 있는지, 그 감정을 어떻게 흘려보내야 하는지 자꾸만 묻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그려보는 시간 속에서 여름은 멀어져 갔지만, 그 시간만큼 나는 조금 더 깊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믿고 싶다.

돌아보면, 올해 절반 이상을 '감정'이라는 단어에 빼앗겼던 것 같다.
'감정은 내 것이 아니고, 허상일 뿐이니 빠지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실제로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여전히 흔들렸다. 다스리지 못한 채 며칠을 잠 못 이루기도 했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곤 했다. 새벽에 불현듯 눈을 뜨면, 수많은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 멍하니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까?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까?


그러던 중,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다른 한국 책들은 기다림 끝에야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도서관에 주문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금세 손에 들어왔다침대에 반쯤 누워 첫 장을 펼쳤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평온을 느꼈다. 문장 하나가 마음 깊은 곳에 닿아 고요와 따스함이 퍼져 나갔고, 몸 전체가 조용히 위로받는 듯했다.

'어떻게 이 책이 나에게 왔을까?'
스스로 물으며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다음 장에는 또 어떤 문장이 나를 위로해 줄까, 그 기대와 사유 속에 나는 한동안 같은 페이지에 머물렀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대표작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원제: Jag kan ha fel)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겸손과 유연함에 대하여

지금 내 안에 확고히 자리한 생각과 신념, 감정,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방식조차도 사실은 잠시 스쳐가는 것일 수 있다는 걸 자주 잊곤 한다. 그러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조금 더 평온해지고, 나 자신을 더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었다.

요즘 나는 생각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책과 어우러진 그림이었다.
토마스 산체스(Tomas Sanchez). 십여 년간 명상을 수행해 온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담겨 있었다. 책 속에서 산체스의 그림은 저자의 메시지와 어우러져,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채워주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흔들림 속에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각을 놓아주십시오.
그때 불안과 걱정도 함께 떠날 것입니다."

첫장을 펼치자 문장들이 위로했다.


책을 읽다 보니, 문장마다 밑줄을 긋고 싶어 졌고, 짧은 메모라도 남기고 싶었다. ‘내 책을 사야겠다.’

지금 나는 한국에서 올 책을 기다리고 있다. 책을 받으면 너무도 반가울 거 같다. 그리고 그 책과 함께,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이어가고 싶다.

“책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이 내게 보낸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문장 이상의 고마운 선물이다.

Just as I am,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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