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식 팬케이크
밤 9시쯤, 남편이 배가 고프다며 냉장고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웃으며 물었다.
“밤에 또 먹게?”
남편은 허기진 배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며, 뭘 먹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노르웨이에 와서 가장 낯설게 느껴진 것 중 하나는 바로 식문화였다. 한국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끼가 기본이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아침식사(Frokost), 점심(Lunsj), 저녁(Middag), 그리고 밤의 가벼운 간식(Kveldsmat)까지 네 끼를 먹는 것이 보통이다.
아침식사는 대개 오전 7시쯤, 학교나 직장에 가기 전 빵, 치즈, 햄, 시리얼, 요구르트 같은 간단한 음식으로 채운다. 점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보통 한 시간 정도 점심시간이 따로 주어지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아예 없거나 매우 짧다. 그래서 직장인 대부분은 자신이 싸 온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책상 앞에서 간단히 먹는다.
이렇다 보니 저녁식사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끼니가 된다. 퇴근 시간이 보통 오후 4시 무렵이라 저녁도 4시에서 6시 사이에 일찍 먹는다. 고기나 생선, 감자, 채소 같은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탁을 나눈다. 그리고 밤 8시 이후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듯 야식을 곁들이는데, 빵이나 치즈, 요구르트, 과일처럼 부담 없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식문화 속에서 자란 남편은 한국에 있을 때도 늘 야식을 챙겨 먹곤 했다. 그때는 이유를 몰라 ‘밤마다 먹어도 괜찮을까, 살이 찌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는 그 습관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남편은 냉장고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우유와 베이컨, 치즈를 꺼내 들며 팬케이크를 만들겠다고 했다. 빵이 없을 때 종종 해 먹는 메뉴였다. 노르웨이식 팬케이크는 미국식처럼 두껍지 않고, 프랑스의 크레페와 비슷하게 얇고 부드럽다. 남편은 시럽 대신 햄과 치즈를 넣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팬케이크를 구워냈다.
“하나 먹어볼래?”
팬케이크를 담은 접시를 내미는 남편을 향해 나는 체중 관리 중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웃으며 말했다.
“팬케이크는 눈으로 먹을래. 대신 내일 아침에 꼭 해줘.”
그렇게 오늘 밤은 눈으로 맛보고, 내일 아침을 기약하며 약속을 받아냈다.
재료 (약 6~8장 기준): 달걀 3개, 밀가루 150g (약 1컵), 우유 400ml, 소금 약간, 버터 (팬용)
선택 재료 (토핑/속재료) :베이컨, 치즈
햄, 잼(딸기, 블루베리 등), 사워크림, 설탕, 메이플 시럽, 신선한 과일 등을 넣어서 먹을 수도 있다.
만드는 법
1. 반죽 만들기
-큰 볼에 달걀과 우유를 섞는다.
-체친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덩어리 없이 부드럽게 섞는다.
-반죽은 크레페처럼 묽어야 한다.
2. 반죽 휴지 (선택)
-20~30분 실온에 두면 글루텐이 안정되어 식감이 더욱 부드러워진다.
3. 속재료 준비하기
-베이컨은 팬에 노릇하게 구워 둔다.
4. 팬에 굽기 & 서빙
-팬을 중 약불로 달군 뒤 버터를 아주 살짝 녹인다.
-국자로 반죽을 얇게 펼쳐 굽는다.
-가장자리가 바삭해지고 표면이 익으면 베이컨과 치즈를 올린다.
-치즈가 녹으면 돌돌 말거나 접어 완성한다.
그동안 제 부엌과 식탁에서 벌어진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할 수 있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낯선 부엌에서 익어가는 하루”부터 “밤 9시, 하루의 마지막 한 끼”까지, 작은 재료와 한 끼 음식 속에 담긴 일상들을 기록하며,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자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잠시 연재를 쉬며 다음 이야기를 위한 숨 고르기를 가지려 합니다.
부엌의 따뜻한 냄새와 음식이 전하는 소소한 행복은 여전히 제 하루 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언젠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올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부엌 앞에서 보내는 매일이 작지만 따뜻한 순간으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