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밤, 넘기는 한 페이지

타국에서 엄마가 배우는 이유

by rufina


하루가 또 저물었구나.


너희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한 뒤,
엄마는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은 너희가 일찍 잠들어 준 덕분에
어제보다 조금 더 긴 밤이 허락되었네.


고마워, 우리 아기들.


엄마는 거의 매일 밤 이렇게 앉아
노르웨이어를 공부하고, 영어를 읽고, 글을 쓴단다.
너희가 자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흘러가고 있지.


요즘은 특히 노르웨이어에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고 있어.
그런데도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아.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지난번 병원 대기실에서
너희가 책을 꺼내 이리저리 넘겨 보았지.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봤어.


엄마는 책을 받아 들고도
몇 줄 읽지 못한 채 다시 덮어버렸어.
괜히 웃으며 “나중에 읽어 줄게”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단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는 너희에게 노르웨이어로 된 책을 자연스럽게 읽어주고 싶어.


또, 너희가 학교에 가게 되면
부모 참여 활동에도 주저하지 않고 함께하고 싶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지만
조금 더디더라도 끝까지 가보려 해.


너희가 한국어로 말을 걸든,
노르웨이어로 말을 하든
엄마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노르웨이어를 배우듯,
너희도 한국어를 꾸준히 익혀주면 좋겠다.


언어 때문에
우리 사이에 작은 벽이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두 언어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우리의 식탁을 떠올려 본다.


그 장면을 생각하며,
오늘도 엄마는 조용히 한 페이지를 더 넘겨본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