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당은 조금 이상했다. 신점 볼 날짜를 잡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속이 얹힌 것 같다고. 그래서 날짜를 앞당겼다. 신내림을 받아야 살 팔자라고 했다. 점을 보러 가기 전 종종 신내림 받는 꿈을 꿨다. 굿판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꿈에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무당이 되어가는 첫 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내림을 받진 않았다. 대신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곳에 오게 된 지 이제 6개월이다. 살아왔던 곳에서 국경을 넘지 않고 가능한 먼 곳으로. 좋아하던 귀여운 가게들, 가끔 들리던 카페, 약간 불친절한 사장님이 있던 꽃가게, 동네 골목길, 집으로 올라가던 오르막길. 그리고 짐. 많은 짐. 돌아갈 생각 없이 짐을 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서 두고 온 것 쯤은 그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립다. 다만 견딜 수 있을 만큼. 만질 수 있는 내 물건들, 헤지다 못해 거의 구멍으로 손가락이 걸리는 오래 덮은 이불, 새로 산 옥색 찻잔, 하다못해 화장실 유리 창을 닦던 다이소 스펀지까지. 그리고 걸을 수 있는 길. 혼자 걷던 많은 밤. 많은 낮. 많은 아침. 좁은 도보에서 사람들의 어깨에 부딪치고 싶지 않아 애쓰던 날. 밀려오는 직장인들 사이로 제법 요령있게 내 공간을 만들던 것. 야근을 하고 막차를 타고 봉천동에 돌아와 건너던 신호등. 좋지 않은 상권에서 은근히 오래 버티던 가게. 버려진 의자. 나뒹구는 쓰레기.
사슴삼촌은 어떻게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게 되셨어요?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서 왔지.
….풉
떠나기로 마음 먹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난 그럴 수 없다. 이 말로 너무 오랜 시간 나를 타일렀다. 많은 순간에 그 문장을 되새겼다. 서러운 마음이 사람에게 내려앉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난 너무 자주 울거나, 어떤 일이 생겨나도 아무런 감정이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곤 했다. 돌 같은게 몸에서 자라나는 것 같았다. 단단함을 넘어서 어떤 힘으로도 깨지지 않는 돌. 피가 도는 걸 막아버리는 돌. 아무데나 부딪쳐서 깨뜨려버리는 돌. 몸 안에서 자란 돌이 말도 숨도 막아버릴 때는 꼭, 근거도 고민도 없이 선택을 하게 된다. 살려면 그래야만 하는 걸 아는 것처럼.
바닷물 만난 돌은 모서리가 참 동그랗다. 제각각 우아한 모서리. 그걸 만들어낸 물에 나를 담구어서일까? 물기 가득한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곳에 집을 구해서일까? 하고 싶은 말을 짜증없이 할 수 있는 날이 많아진다. 나의 슬픔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많아진다. 밭에 자란 풀을 베고 온 날이나, 귤나무 약 치는 줄을 잡는 일을 오래 하고 돌아온 날엔 뜨거운 물로 나를 헹궈버린다. 오래된 친구가 보내온 자마이카 티를 끓여마신다.
익숙한 괴로움을 넘어간다. 나를 섬으로 데려오고 나서 겨우. 넘실거리는 물에 태워 멀리 보내버린다. 일단 지금의 나를 뭍으로 데려다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의 눈가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쁨을 보게 된다. 내 것이 아닌 삶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반짝이는 별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경 쓰지 않고도 알 수 있게 된다. 내 몸에 닿는 손에 나를 조금씩 내려 놓을 수 있게 된다. 아침을 챙겨 먹는 일은 보통 다짐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간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것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끼는 아니라는 것. 둘이 사는 집 빨래는 정말 빠르게 쌓인다는 것.
제주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