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한 세상에서 질서를 바라는 모순적인 존재
우리는 왜 어질러진 방을 보면 불편해하고, 한눈에 알아보기 편한 자료나 체계적으로 짜인 계획에는 묘한 안정감을 느낄까. 단순히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무질서해지려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에너지를 투입해 질서를 유지하거나 만들려는 인간의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열역학 법칙이 말해 주듯, 이 세계는 본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모든 것이 스스로 흩어지고 뒤섞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정돈하고, 체계를 세우며, 질서를 찾으려 한다.
어떤 음악가가 완벽한 한 소절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수백 번을 반복 연습하고, 과학자가 실험을 위해 매일 실험실에 머물며 오류를 교정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면에는 막연한 열정이나 목표 의식 외에도, 보다 나은 질서를 창조하려는 인간 특유의 동기가 자리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미지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 이것은 허무맹랑한 집착이 아니라, 에너지를 들여 더 나은 세상을 얻으려는 의지다.
우리 주변에서 열정적인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고, 결국 그 결과물에 무질서를 정돈한 흔적을 새긴다. 깔끔하게 정리된 논문이나 작품, 명료한 아이디어 등은 전부 이들이 투입한 에너지가 가시화된 산물이다.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감탄하면서, 무언가를 완성한 이들의 땀과 고민,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질서를 본능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처럼 질서를 부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깨끗이 정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혁신이란 개념도 결국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큰 질서를 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융합 기술로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얻거나, 의료기술을 발전시켜 질병이 초래하는 혼란을 줄이는 일 또한, 무질서한 환경을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기 위한 시도다. 우리는 무질서한 세상에 내가 그린 그림을 투영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창출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질서를 부여하는 데 목숨을 거는 걸까. 열역학 제2법칙에 맞서 "나는 더욱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어떤 본능 같은 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 한가득 널브러진 물건을 치우고 난 뒤 느끼는 뿌듯함, 논리가 명확하게 서 있는 글이나 이야기 앞에서 느끼는 쾌감은 결국 우리의 질서를 향한 갈증을 채워 준다. 인류가 수없이 많은 예술과 과학, 문명을 발전시켜 온 동력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은 의식하든 못 하든, 늘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가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쉽고 통제 가능하게 만들려 한다. 공부를 하고 일터에서 전문 지식을 쌓는 일,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수하거나 협업하여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 전부 그 연장선이다. 우린 매 순간 부딪히는 무질서를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또 여기서 생겨난 에너지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자연스럽게 감탄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완성된 아름다운 작품이든, 끝없는 실패 끝에 이루어진 연구 성과든, 그 안에 담긴 에너지와 노력이 사람들 마음속에 큰 울림을 만든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라는 평판은 곧 그 사람이 얼마나 강렬하게 세상을 정돈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정돈을 얼마나 매혹적으로 성취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결국 인간은 자유롭지도, 완벽하게 구속되지도 않은 가운데, 무질서해지려는 세상에 대항해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다. 크건 작건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어수선한 공간을 치우고 반듯한 자료를 만들며, 언어와 개념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모든 순간이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아내고,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노트 한 권일 수도, 예술 작품일 수도, 새로운 기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의 본성—질서를 부여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더 나은 질서를 기획하고, 또 창조해 나가면서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우리의 힘과 아름다움을 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다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