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냉이된장찌개와 냉이된장무침
1월, 냉이된장찌개와 냉이된장무침
국물용 멸치와 나물류들을 사러 안군과 부전시장에 왔다. 엄마 따라다닐 줄만 알았지, 내가 직접 장을 보러 시장에 온 적은 딱히 없는 데다 부전시장은 두 번째 방문이라 단골집도 아직 없어서 기웃기웃 가격만 살피고 있었다. 어디서 사는 게 좋을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시장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았을 즈음 마음에 드는 가격의 청국장을 하나 구매하고부터 슬슬 지갑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장 외곽 쪽에서 시장 안쪽으로 다시 돌아 들어가는데 호박채를 사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엄마가 사는 걸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요리 재료라 늘 한번 사보고 싶었다.
"저도 호박채 하나 주세요."
주부9단 아주머니가 고른 호박채니까 믿음이 갔다. 호박채를 담아주시는 걸 보고 있는데 그 옆에 있는 냉이와 그 뒤에 꽂혀있는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3000원.
'3000원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겨울인데 벌써 냉이가 나오네. 봄에 먹으려 했는데..'
결국 나는 냉이까지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냉이를 사 오고 일주일이 흘렀다. 처음 써보는 재료라 시장에서 사 온 다른 식재료들보다 순번이 밀려났다. 더 이상은 신선도가 떨어지겠다 싶어 드디어 냉이를 집어 들었다. 인터넷에 냉이 손질법을 검색했는데, 역시나 냉이 요리 자체는 쉽지만 손질법이 많이 귀찮았다. 냉이를 손에 들기 전에 알타리무 김치를 담가서 많이 피곤한 상태였는데, 거실에 있는 안군과 대화를 나누며 싱크대 앞에서 계속 손을 움직였다. 냉이 뿌리를 다듬는 로봇이 된 것처럼 뿌리의 흙을 벅벅 긁었다.
다듬을 때는 양이 엄청난 것 같았는데 막상 요리를 하려니 겨우 한 줌이었다.(이럴 때면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래는 냉이된장찌개만 하려고 했는데, 냉이 손질법을 검색했을 때 냉이된장무침 레시피가 보여서 야심 차게 둘 다 해보기로 했다. 한 줌의 냉이를 신중하게 둘로 나눴다. 찌개에는 조금만 넣어도 맛이 날 테니까 된장무침용을 조금 더 많이.
냄비를 여러 개 내기 싫어서 나름 설계적으로 무침용 냉이를 먼저 데쳤다. 레시피에는 1분만 데치면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1분은 좀 의심스러워서 소심하게 1분을 더해 2분으로 했다. 나물을 데치는 적절한 타이밍이 아직은 어렵다. 너무 적게 데치면 풀맛이 나고 너무 많이 데치면 풀이 죽어서 연신 뒤적이며 눈치를 보게 된다.(시금치무침을 처음 했을 때 내가 너무 살짝 데쳤는지 안군이 풀맛이 난다고 했다. 엄마 지인이 직접 재배한 신선한 시금치라 건강한 맛이 나는 거라 우겼다.)
데친 냉이를 찬물에 씻어주고 된장 적당히, 고추장 아주 조금, 다진 마늘 조금을 넣고 무쳐줬다. 마지막에 화룡점정 참기름을 붓고 다시 한번 버무려주니 냉이된장무침이 완성되었다. 된장무침을 반찬통에 담아주고 냉이를 데쳤던 냄비에 곧바로 멸치 다싯물을 우렸다. 그리고 앞서 알타리무 김치를 담글 때 몇 개 빼둔 (김치 담그기에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던)알타리무와 감자를 썰어서 멸치 다싯물에 넣어줬다. 적당히 끓이다가 된장을 풀고 아까 남겨둔 냉이를 두, 세 번 썰어 넣고 두부까지 투하해줬다. 반모만 넣으려 했더니 유통기한이 하루밖에 안 남아서 한모를 다 썼다. 다 끓이고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냉장고에서 미리 빼둔 소고기를 깜빡하고 안 넣었다. 아까부터 눈에 투명 비닐봉지에 든 빨간 것이 보였는데, 무의식적으로 고춧가루인 줄 알았더니 그게 소고기였다. 이번에는 화룡점정 소고기를 넣고 좀 더 끓여줬다. 냉이와 된장으로 만든 두 가지 요리 완성!
다음 날 저녁, 흰쌀밥에 냉이된장무침, 콩나물무침, 도라지무침과 참치계란전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남은 냉이된장찌개와 함께 먹었다. 겨울에 미리 즐긴 봄날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