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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요리도 다시 보자

1월, 알타리무 김치볶음밥

by 정유빈 Feb 26. 2025

1월, 알타리무 김치볶음밥


 "이걸 왜 버려! 이것도 다 먹을 수 있어."

 나는 안군이 엄지손가락만 한 알타리무를 옆으로 던져 버리는 걸 제지했다. 한 해 전 12월 15일, 주말농장의 마지막 농작물인 알타리무를 수확 중이었다.

 "버려! 그거 못 먹어."

 "내가 먹을 거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라."

 알타리무 씨앗을 뿌렸던 가을, 때아닌 폭우가 내려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했던 알타리무 싹들이 다 쓸려내려갔었다. 덕분에 원래의 파종 시기보다 늦게 다시 심었던 터라 전부 알맹이들이 작았는데, 그 수도 얼마 안 돼서 나는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것들도 아까워서 버리질 못했다. 조금이라도 알맹이를 키워보려고 수확 날짜를 한 주 미뤘었는데, 심지어 그 한 주 동안 파릇파릇하던 무청도 시들어 못쓰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먹을 만해 보이는 무청들을 뜯지 않고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니 옆에서 안군이 버리라고 성화였다. 내가 먹을 거라며 박박 우겨서 다 챙겼지만.


 시간이 흘러 1월의 중순. 그렇게 열심히 지켜낸 엄지손가락만 한 알타리무와 무청이 아직 그대로 냉장고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 안군과 산책을 하는데, 안군이 알타리무 김치를 담그자고 제안했다. 냉장고 열 때마다 참 찝찝했는데... 그래, 해버리자 싶었다.

 그길로 동네 시장에 재료를 사러 갔다. 엄마와 김치 담갔던 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김치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찾았다. 마트에 들어가자 홍고추가 눈에 들어왔다. 몇 개 들지도 않았는데 3천 원대. 엄마가 홍고추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굳이 사지 않기로 했다. 새우젓은 잘 쓰지도 않는데 비싸다 보니 마트 두 군데를 비교한 끝에 좀 더 싼 처음 마트에서 구입했다. 마트에 들어오기 전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사과 가격을 파악했는데 시장이든 마트든 대동단결 5개에 만원 정도였다. 마트 사과는 국내산 사과라고만 적혀 있고 어디 출신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새우젓과 함께 겸사겸사 사버렸다.


 집에 돌아와 내 블로그에 포스팅해뒀던 엄마표 김치 레시피를 살펴봤다. 아차, 통마늘이 필요하다는 걸 완전히 까먹었다. 다행히 집에 다진 마늘은 있어서 그걸로 슬쩍 대체하기로 했다. '어차피 갈아야 하는 건데, 통마늘을 갈면 다진 마늘이지 뭐.'라고 합리화하며.

 냉장고에 한 달을 묵혀뒀던 알타리무를 개봉해 보니 그중 3개가 썩어있었다. 한 달 동안 썩은 게 고작 3개인 거면 다행인 건가? 꾸역꾸역 챙겨온 무청은 결국 거의 다 떼서 버려야 했다.

 무를 다듬고 언제 산 건지도 모르겠는, 아주 조금 남은 천일염 굵은소금을 뿌려줬다. '역시 놔두면 언젠가는 다 쓸 때가 오는구나.' 싶었다. 1시간 정도 재워두며 그 사이 양념을 만들었는데, 양파 반 개, 사과 한 개, 다진 마늘 한 숟가락을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그릇에 덜어준 뒤 고춧가루를 네 숟가락 넣었다가 두 숟가락을 다시 덜어내고 안군이 매운 걸 좋아해서 특별히 매운 고춧가루를 두 숟가락 다시 넣었다. 이 매운 고춧가루 때문에 눈이 매워서 계속 울면서 양념을 비볐다. 간을 보며 새우젓을 넣어주면 양념 완성! 1시간 동안 잘 절여진 알타리무에 양념을 버무렸다. 아쉬웠던 건 매실청이 없었다는 점. 엄마는 김치 양념에 매실청을 넣어줬는데, 확실히 달큼한 맛이 빠지니 조금 심심했다.


 그런데 확실히 이 요리는 망했다. 아니, 망했었다. 아직 자칭 주부 2단인 나에게 김치는 어려운 세계였다. 김치 맛이 나기는 했지만 엄마가 만든 김치와 확실히 달랐고, 뭔가 먹기가 꺼려져서 밥상에 잘 올리지 않았다. 어쩌다 먹게 되면 상한 건 아닐지 의심하며 얼른 삼켜버렸다.

 그렇게 냉장고 안에서 익어가는(어쩌면 상해가는) 나의 첫 김치가 아까워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그냥 먹기 찝찝하면 익혀서 먹자.'

 알타리무 김치볶음밥을 하기로 했다. 김치 대신 알타리무 김치로 만드는 김치볶음밥.

 알타리무 김치를 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썰어 볶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김치 국물을 팬에 조금 붓고 같이 볶는다. 그다음 햄, 밥을 순차적으로 넣어 볶다가 김가루를 뿌려주면, 일주일에 한번은 꼭 먹고 싶은 김치볶음밥이 완성된다.

 "와, 맛있다."

 역시 망한 알타리무 김치여도 김치볶음밥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건가. 처치 곤란이었던 내 알타리무 김치가 이렇게 맛있다니... 얼마 안 되는 알타리무 김치의 양이 갑자기 아쉬워졌다.

 '망한 요리도 다 돌파구가 있구나.'

 총 세 번의 알타리무 김치볶음밥을 만든 끝에 김치통은 텅텅 비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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