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감자 스프
1월, 감자 스프
늦은 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잘 지키는 루틴이랄까. 딱히 보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살핀다. 나의 알고리즘 추천 피드는 흥미로운 썸네일의 인스타툰, 궁금하진 않은데 클릭해 보게 되는 연예인 소식, 예쁜 주방 아이템들을 소개하기 위한 요리 영상 같은 것들로 가득하다. 그중 냄비가 보이는 영상을 클릭했다. 냄비나 프라이팬이 보이면 괜히 클릭해 보는 요리 영상 중독자. 감자 스프를 만드는 영상이었다. 정확히는 감자 스프와 구운 알배추 요리 영상이었는데, 감자 스프 부분만 계속해서 돌려봤다.
'이거 해볼만 한데?'
재료는 감자, 양파, 우유, 체다치즈가 전부. 다 집에 있는 것들이었다.
'내일 주말이니까 간단히 이거나 해먹어야지.'
지켜질지 아닐지 모를 결심을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으로 전날 해둔 청국장찌개를 끓여 예비 남편 안군과 밥을 말아먹었다.
'점심은 뭘로 할까?'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점심 생각이라니, 나도 참 나였다.
'진짜 감자 스프 한 번 해볼까? 흠...'
점점 귀찮음이 몰려왔다.
"... 해보자! 오늘 점심은 감자 스프야! 알았니?"
고민만 하며 안군과 거실에 나란히 누워있다 벌떡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갔고, 검은 봉투 속 감자 3개를 집어 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곧바로 다음 난관에 봉착. 감자를 찌려면 설거지를 해야 했다. 압력 밥솥에 감자를 쪄야 하는데 방금 다 긁어먹은 압력 밥솥에는 밥풀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전자레인지용 찜기 살걸..'하고 잠시 후회했다. 그 많은 요리 도구를 샀는데 아직도 전자레인지용 찜기가 없다니. 뭐 어쩌겠나, 무거운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모든 설거지를 끝내고 감자 3개도 뽀득뽀득 씻었다. 압력 밥솥에 감자와 물을 조금 붓고 소금도 약간 뿌려줬다. 엄마는 감자를 찔 때 신당원을 뿌리지만 내 집에 신당원 같은 건 없다. 밥솥 뚜껑을 닫고 전기 코드를 꽂은 뒤 '만능찜' 모드로 30분. 잠시 텔레비전을 보며 여유시간을 가졌다.
칙칙칙칙.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직은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든 꺼내어 손톱으로 조심조심 껍질을 벗겼다. 조금 기다렸다가 한 김 식으면 해도 됐을 텐데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감자 찌기를 성공했으니 얼른 결과가 보고 싶었다. 다시 현관에 나가 다른 검은 봉투에서 양파를 하나 꺼내왔다. 양파는 반 쪽만 얇게 채 썰었고 애용하는 냄비 겸용 프라이팬을 꺼냈다. 막 다룰 수 있는 저렴한 라면 냄비가 필요해서 인터넷에서 삼만 원 정도를 주고 구매했던 것인데, 냄비 겸용 '프라이팬'답게 볶음 요리를 해도 전혀 들러붙지 않아서 주변에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하는 녀석이다. 내 애정하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줬다. 이런 걸 캐러멜 라이징이라고 하던가?
다음으로 믹서기에 준비된 감자와 양파를 넣어줬다. 전날 인스타그램에서 본 레시피 영상에서는 우유의 양이 정확히 기재되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내 느낌대로 부어줬다. 뻑뻑한 감자 때문에 처음에는 잘 갈리지 않았는데, 숟가락으로 살살 저어주면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 양파를 볶았던 냄비 겸용 프라이팬에 잘 갈린 페이스트를 다시 부어주고 중약불에서 끓였다. 원팬 파스타가 아니라 원팬 스프! 조금 열이 올랐을 때 체다치즈 한 장을 넣고 페이스트에 녹아들도록 국자로 저었다. 감자 스프 옅은 색과 체다치즈 진한 색이 섞여 하나의 노란색이 되었다. 퐁퐁 기포가 터질 정도로 스프가 따뜻해져서 스프를 그릇에 담았다. 안군 몫까지 딱 두 그릇이 나왔다. 감자 스프 완성!
감자 스프가 다 될 시간에 맞춰 미리 오븐에 넣어둔 블루베리 베이글 토스트와 함께 점심상을 차렸다. 베이글 두 개와 스프 두 그릇. 나는 스프에 설탕도 소금도 후추도 넣지 않았다. 볶은 양파가 들어가서 충분히 달달하고 체다치즈가 소금의 역할을 해줬을 테니까. 그 덕에 감자의 풍미가 더 깊게 느껴졌다. 후추를 좋아하는 안군은 스프에 후추를 톡톡.
감자 스프 한 스푼, 빵 한 입, 다시 감자 스프 한 스푼.
'아침부터 부지런 떨길 잘 했다..'
한파가 계속되는 1월, 따뜻한 집에서 만든 따뜻한 감자 스프가 일요일 점심을 가득 채워줬다. 감자 3개, 양파 반 쪽, 체다치즈 한 장이면 완성되는 마법의 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