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소풍날이다.
난 엄마랑 단둘이 소풍 갈 생각에 신났다. 엄마는 늘 그렇듯 바쁜 사람이지만 소풍날만큼은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엄마가 싸는 김밥을 하나씩 주어 먹었다. 잘라 놓은 김밥은 하나씩 사라지고 엄마는 스무 줄 정도의 김밥을 쌌다.
아빠, 할머니, 오빠, 동생 그리고 엄마랑 내가 먹을 김밥.
드디어 엄마와 처음으로 소풍을 간다.
옷을 입고, 양말을 챙겨 신고, 문 앞을 나섰다. 유치원 차가 올 시간이 다 됐다.
집을 나서는데, 엄마는 가지 않았다.
난 할머니와 소풍을 갔다.
나만 할머니와 왔다.
나 혼자 엄마 없는 아이가 됐다.
아니 할머니와 같이 가지 않았다.
할머니는 저만치 멀리.
나는 혼자.
최악의 소풍이었다.
그날을 기억한다.
난 그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소풍까지 단 한 번도 기분 좋은 적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이미 다 옷을 차려입고, 도시락을 챙겼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 간식비를 줬다.
난 그것도 모르고 어린 시절 엄마를 원망했다. 모두 오해였다.
간식비는 할머니 쌈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 어린아이는 간식도 못 먹고, 사진 속 얼굴이 어둡다. 신난 친구들 사이에 나 혼자만 울상이다.
내가 만든 코끼리 모루 인형. 엄마는 코 모양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엄마 : 코 모양이 왜 이래? 코끼리 못 봤어?
나 : 어. 못 봤어.
엄마 : 왜 못 봐. 창경궁 가서 봤잖아.
나 : 몰라.
엄마는 내가 유치원 때 소풍 간 곳이 코끼리가 있었다던 창경궁이라고 했다.
기분이 상한 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앞에 있던 눈에 보이지 않았을 거다.
모든 오해는 풀렸지만, 나의 어린 날 소풍의 기억은 여전히 최악으로 남아있다.
다만 할머니는 신이 났다. 나의 소풍을 누구보다 기다렸을 할머니가 신났으면 됐다.
돈도 벌고.
그런데 엄마, 그 당시 코끼리는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