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한 집안 공기를 뚫고, 집을 나섰다. 부엌에 있던 엄마는 밥을 먹고 가라고 한다.
나 : 안 먹어. 갈게.
설 다음 날이다. 엄마한테 미안했다. 명절만은 좋게 지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 알지만 이번 갱물은 유난히 나를 화나게 했다. 엄마를 뒤로 한채 집을 나섰다.
집 근처 골목 횡단보도. 차가 슬슬 멈춘 듯. 난 횡단보도로 걸어갔다. 갑자기 우회전을 한다. 놀라 피하려 하지만 그 차는 멈추지 않았다.
눈을 떴다. 까맣다? 모르겠다. 앉아본다. 무슨 상황이지?
운전석에서 사람이 나오고, 난 턱을 부여잡고 있다. 왕복 6차선 도로의 두 번째에 앉아있다. 분명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나의 왼쪽 운동화는 차 왼쪽 바퀴 앞에 놓여 있다.
6미터? 날은 거다. 인도에 서 있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보인다. 시내버스가 내 옆에 멈춰 섰다. 기사님이 차 문을 열었다.
119에 신고하고, 위험하니 인도로 올라가세요.
출근 시간이다. 못 움직이겠다. 운전자는 놀랬는지 아빠를 불렀다. 요구르트 아줌마, 운전자 아빠가 날 들어 옮긴다.
운동화, 자동차 왼쪽 바퀴, 시내버스
운전자 아빠는 도로 위에 있는 운동화를 주어다가 신겨주셨다. 울음이 터졌다. 몇 살인데 우냐. 자동차 속에 있던 운전자의 자녀가 밖으로 나왔다. 운다. 나도 울고, 운전자도 운다.
교통사고가 나면 주마등처럼
내가 살아온 과거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누가 그랬나?
그런 거 없다. 아마 죽지 않았기 때문인가?
나는 엄마를 소환했다.
바닥에서 울고 있는 나. 눈물만 흐른다. 엄마는 지갑과 점퍼만 챙기고, 허겁지겁 왔다. 이게 뭔 일인가. 현실 같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현실 같지 않았다.
새해 첫 도전. 퇴사를 했다. 시험을 앞두고 있다. 세상이 내 인생을 가로막는 것 같다. 그냥 모든 게 다 나를 가로막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아침에 일찍 나와서 이러고 앉아있나부터 시작해 1분만 늦었어도 1분만 빨랐어도. 이상한 생각들에 휩싸였다.
이게 진짜인가?
구급차는 의외로 늦게 온다. 출근길이다. 택시를 타고 가는 게 낫겠다.
마스크는 눈물범벅이다. 콧물은 아닐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로 인해 두꺼운 마스크를 착용했다. KF94 마스크가 칼날에 찢긴 듯 찢어졌다. 마스크 안 썼으면 얼굴 다 나갔겠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그 와중에 엄마는 내 손이 시릴까 걱정한다.
인도 바닥에 앉아있다. 내 가방과 함께.
이게 진짜일리 없어.
내가 구급차에 실리다니. 남녀 대원 각각 1명. 벨트로 나를 고정시켰다. 머리가 아프다. 오함마로 정수리를 내려친다. 앉아서 가고 싶다고 요청했다. 안된다고 거절한다. 난 수긍한다.
남자대원이 말을 건다. 안 들린다. 여자대원이 말을 건다. 대답한다. 그때의 질문은 생각나지 않는다.
엑소시스트인가?
팔이 혼자 위, 아래로 움직인다. 공중에 떴다가 내려간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무섭다.
엄마, 내 팔 왜 이래?
구급대원들의 표정은 늘 그래왔다는 듯 평화롭다. 그들에게 나 같은 사람, 이런 행동은 일상이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의사에게 대뜸 두통약 좀 주세요. 의사는 기다리라고 한다. 엄마 너무 아프니까 약 좀 사다 줘. 결국 약은 받지 못했다.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하는데 오른쪽 발목이 절뚝절뚝. 걷긴 걷는다. 경찰관 둘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병원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코로나시대다. 아픈데 경찰까지 상대해야 하니 힘들었다. 직업이니 이해한다. 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난 입원 수속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