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초록불. 숫자가 빨리 줄어든다. 아직 절반도 못 갔다. 안절부절이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빠른 세상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이렇게 다급한 적이 있었던가? 마치 달리기 전. 탕! 소리를 기다리는 계주 선수 같다. 그렇게 마음만은 빠르게 준비하고 있었다.
버스 계단은 높고, 가파르다. 약자에게 친절한 세상은 없다. 고작 스무 걸음조차 빠르게 가지 못하는 나. 저 멀리 있는 버스로 향하지 못하고, 정류장에서 손을 들었다.
기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 좀 걸어와서 타시지. 한껏 예민해진 나는 정류장에서 탄게 잘못입니까? 묻는다. 절뚝. 정적이 흐른다. 평소의 나였다면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이동했을 것이다.
플라스틱 음료수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너무 단단하게 고정됐다. 식당 음식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고, 크다. 엄마는 모든 음식은 잘게 만들어주고, 밥대신 죽으로 바꿔줬다. 생각 없이 먹은 무생채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난데없는 고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난 세상이 말하는 나이론 환자다.
세상에 역지사지가 기능한 사람은 없다. 직접 몸소 체험해 보기 전까지. 엄마, 빨리 와! 하던 나는 엄마보다 느릿느릿 걷고 있다.
세상의 노인들은 의외로 나보다 빠르고, 강하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