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하찮다.
추운 겨울. 바람이 무릎을 파고든다. 순간 무릎과 발목이 통증이 심해진다. 중심을 잃었다. 주차장에서 넘어지고 만다.
넘어지면서 오른손은 다치면 안 되니 왼손으로 방어를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니 얼굴을 치켜든다
슬로 모션처럼 차근차근 헤쳐나갔다. 다치지 않겠다는 일념. 와!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
아프다. 아프구나.
바로 무릎의 통증이 느껴진다. 신기했다. 바로 아픔이 느껴진다는 것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 걷는다.
다행이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항상 이런 것들을 생각해 왔다.
다시 교통사고의 날이 온다면, 넘어진다면?
유도 선수처럼 낙법을 하거나, 높이뛰기를 해서 피한다거나 수 천 번 생각했다. 시뮬레이션.
유도를 배울까? 난 절대, 다시는 다치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왔다.
옷이 엉망진창이다. 잔디 풀이 패딩잠바에 잔뜩 묻어 있다. 특히 엉덩이 쪽에. 아무도 길에서 말해주지 않았다. 다행이다. 몰랐으니 창피할 것도 없다. 엄마는 내 옷을 보고 놀란다. 나는 나의 영웅담을 풀어놓는다.
가만히 듣던 엄마는 그만하길 다행이다 라며 나를 안았다.
엄마, 나도 그 생각했다니까!
우리 집은 재개발 공사지역 근처라 진동과 소음이 심하다. 주택 벽이 갈라지고, 벽돌이 깨진다. 어느 집들은 수도관이 파열됐다.
우리 집은 커튼봉이 파손됐다. 일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며칠 전 진동이 나면서 걸려있던 행거가 쓰러졌다.
내 몸을 덮쳤다. 그곳을 힘겹게 뚫고 나왔다.
다친 곳 하나 없이. 천만다행이다.
엄마는 전쟁터가 된 옷방을 보며 안 다쳤냐고 묻는다.
나 : 어! 하나도 안 다쳤어. 이게 내 위로 쓰러졌는데도. 신기하지?
엄마는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짜 다행인 일들의 연속이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고통이 사소하다.
사실 나도 다른 사람의 고통이 사소할 뿐이다.
그냥 남일이다.
내 일이 되면 달라진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확대해석한다고 한다.
마치 나만 슬픈 듯, 나만 당한 듯. 억울하다.
큰 파도 후 작은 파도는 귀엽고, 하찮다.
내 남은 인생도 귀엽고, 하찮은 일들만 생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