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길 다행이다
엄마는 교통사고 이후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처음에는 목이 쉬었겠거니, 기운이 없어서 그랬겠거니 생각했다.
한참 지나도 목소리가 계속 갈라지고, 크게 말을 할 수 없어 간 동네 병원에서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심하게 놀랄 경우 성대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밀 검사를 위해 충북대 병원으로 예약을 잡아줬다. 일주일 후 충북대 병원으로 가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다시 일주일 후 검사 결과.
성대마비. 원인 불명.
암이 아니라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암 아닌 게 어디야.
교통사고 이후, 엄마의 다리,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변해간다.
새언니의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외숙모도 돌아가셨다.
이종사촌 오빠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사람들이 무섭게 떠나간다.
이옥희 할머니의 장례식.
가장 친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를 위로해 주고, 감싸주던 할머니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머니께 삼겹살을 사드렸었다. 다음에 소고기로 갚으라고 말했었다. 할머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그게 마지막 식사였다. 소고기 대신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었다. 할머니는 왜 우리에게 아픔을 알리지 않았을까?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다.
나도 모르게 슬픔에 빠져있는 가족들에게 물어봤다.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는지. 할머니의 딸은
사고 후 몸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연락을 안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을 생각 못했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 딸을 안고, 장례식에서 펑펑 울었다.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할머니는 한동안 충북대에 입원하셨다. 어쩌면 엄마와 나는 할머니를 만날 수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옥희 할머니를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이옥희 할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흘려보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난 이제야 할머니 말을 이해하게 됐는데. 할머니는 멀리 떠나서 더 이상 할머니에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위로해 주고, 손을 잡아주던 이옥희 할머니가 보고 싶다.
삼겹살 대신 소고기를 사드릴걸 후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