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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희 할머니

by 여유

오랫동안 알고 지낸 가장 친한 할머니가 있다. 이옥희 할머니. 할머니 집에서 잠도 같이 자고, 할머니랑 같이 외식도 했다. 삼겹살도 사드리고, 할머니는 우리랑 이렇게 있는 게 재밌고, 좋다고 하셨다.


아빠가 떠난 뒤 할머니는 엄마가 걱정돼 우리 집에 머물기로 하셨다.


엄마가 출근 한 동안 나는 할머니께 엄마 흉을 봤다. 40년 넘게 아는 지인을 통해 수십 년간 쓸모없는 보험들을 가입해 돈을 날린 일. 우리 가족에게는 매우 큰 일이다.


그런데 할머니에게는 나보다 백배, 천 배 더, 보험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그건 너무 큰 일이기에 나눌 수 없다.


할머니는 내 걱정을 하셨다. 그리고는 그만하길 다행이여 얼굴을 매만져 주셨다.


다시 화가 올라왔다. 다행?


장례식 때도 보는 사람 족족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난 다행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화가 치민다. 그렇게 다행이면 당신들도 당해보라고, 그때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나.



할머니 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이가 고작 20살쯤 무렵, 무심천 대교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할머니 눈에는 내가 기특했나 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 엄마 옆에 존재한다는 것. 나 자체에 대해.


난 자식을 잃은 사람이 아니다. 함부로 할머니를 위로하거나 이해하기에는 너무 큰 슬픔이다. 다만 나와 할머니는 서로의 손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졌다. 분명히 할머니는 불면증이라고 했는데. 뻥인 듯하다. 낮이고, 밤이고 편안하게 잘 주무셨다.


입맛이 없다던 할머니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드시고, 엄마 음식이 맛있다고 좋아하셨다. 할머니와 같이 있는 며칠이 나에겐 행복이었다.


입맛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는 내 마음이 할머니의 드렁드렁 코 고는 소리에 조금은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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