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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니까, 법 공부부터 다시

초심을 찌른 댓글 한 줄

by 창순이

선거사무원이 대리투표를 하다 구속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피의자는 여느 피의자들처럼 “그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사 하단의 댓글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선거사무원이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됨. 경찰이 기본적인 법도 모르고 경찰 노릇하고, 의사가 수술할 줄 모르면서 수술하는 거랑 뭐가 다름?”


그 댓글을 보는 순간, 뜨끔했다.

마치 내 속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으로서, 나는 과연 법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자신 있게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단순히 겸손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수사규칙 중 반려 제도가 폐지되면서,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들도 접수 전 단계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쏟아진다.

수사관 대다수가 과중한 업무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사건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 보니,

정작 중요한 ‘기본’ 공부는 점점 뒤로 밀려나 버렸다.


물론 매 사건마다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기록을 살핀다.

그러나 그건 ‘해당 사건을 위한 공부’ 일뿐,

‘기초를 다지는 공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초가 약하면 집이 무너진다. 수사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법률 지식이 뿌리처럼 단단히 박혀 있어야,

예기치 못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편함을 위해 공부를 뒤로 미뤄왔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익명의 댓글 하나가

나를 찔렀고, 동시에 나를 일으켜 세웠다.

기본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긴 날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댓글을 남겨준 익명의 작성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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