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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음을 담은 포장지

꽃을 들고 달리다.

by 창순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연애 초반의 일이다.

아내는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오빠, 나한테 꽃 선물 언제 해줄 거야? 오빠한테 꽃 받는 게 소원인데!”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꽃 선물은 너무 비실용적인 것 같아. 금방 시들고, 받으면 또 용기에 옮겨 담아야 하잖아.”


그 짧은 대화 이후로, 아내는 다시는 꽃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도 꽃은 여전히 ‘비싸고 금방 사라지는 물건’ 일뿐이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꽃을 선물한 날은 2025년 6월 19일.

아내가 대학 교직원 최종 면접에 떨어진 날이었다.


아내는 29년을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다.

화목한 가정, 중산층의 경제력, 그리고 지금의 다정한 남편(나)까지.

삶이 거칠게 그녀를 밀쳐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날의 불합격은, 아내에게 쉽지 않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내 고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내의 오래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꽃가게에 예약을 하고, 수령하러 가는 그 모든 과정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어색하고 서툴렀다.

무엇보다 낯간지러워 미칠 뻔했다.

꽃을 들고 거리 한복판을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진땀이 났다.


꽃가게에 들어가기 전,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창순이 고객님 맞으시죠? 꽃 다 준비됐어요!

그나저나 여자친구분 너무 부러워요~ 요즘 남자분들 이런 거 잘 안 하시던데!”


사장님의 호의에도, 나는 짧게 인사만 건넸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꽃을 들고 재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했다.

모든 사람이 나만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아직 방심은 이르다.

진짜 마지막 관문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집까지.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아내는 창가에서 햇살을 맞으며 다른 회사 필기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수고 많았어. 오는 길에 한 번 사봄ㅋㅋ”


“아놔, 왜 이러는데… 나 이러면 우는데…”


아내는 말없이 10분 동안 조용히 울었다.

오래된 소원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꽃 한 송이를 사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체감상 10km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럼에도 아이처럼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은

내게 마라톤 완주보다 훨씬 더 큰 의미였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꽃이란 건 실용성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꽃 선물은 결국 나의 노력이고, 관심이며,

귀찮음을 감수해서라도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꽃은 실용적인 선물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나의 진심을 담은 포장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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