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나 고우나 내 일

직장이 나를 키운

by 온행

직장에서 9시부터 18시까지 자아를 죽여가며 능력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만큼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이 곳에서 많이 배웠다.

싫은 사람과 부대껴가며 내 감정을 숨기는 요령도 배웠고,

어떻게 나이 들어야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경계를 유지하며 빠르게 상대의 기질을 파악하는 눈도 길렀다.

나이와 연륜이 늘어가며, 사회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달라짐을 알게 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나 자신을 성장시켰다.


챗지피티를 위시한 AI 도구들, 복잡한 엑셀 함수, 자료 수집과 편집 스킬, 빠르고 예쁘게 만드는 PT자료,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채는 본능적인 인사이트까지.

직장에 나와있지 않았더라면 접할 일 없었을 현대 문물(?)도 한때는 나를 힘들게 했지만,

결국은 배워놓았어야 하는 생존 스킬이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괴로움과 호기심이었다.

시간이 절로 가는 즐거운 일만 골라 했다면,

인내가 필요하지 않은 쉬운 일것들만 반복했을 것이 뻔하다.



사기업에 다니고 있는 남편은 10년 사이에 4번이나 이직을 했다.

그 중 2번은 아예 직종을 바꿨다.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쯤에는 우리 둘의 수입 차이가 그닥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이직을 거듭할수록

나는 공무원의 한계와, 사기업의 큰 보상, 특히 외국 기업의 한계 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절감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부동산 블로거인 ‘대치동 키즈'의 블로그를 보면

그가 어떻게 목돈을 만들어 부동산에 투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중간 관리자급이었던 시절, 타의로 희망퇴직을 하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련을 기회로 바꾸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재취업하였고, 희망퇴직으로 받은 이른 퇴직금을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다.

타의로 직장에서 물러나는 상황에서,

게다가 젊은 가장의 위치에서 그가 느꼈을 불안함과 초조함을 어찌 내가 표현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것을 기회로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자가 되었고,

지금도 직장을 다니며 부동산 투자를 계속하는 것 뿐 아니라

투자 멘토로 활동하며 본업을 넘어서는 부수입을 얻고 있다.


남편이 4번이나 이직을 한 것도 그의 자의는 아니었다.

원대한 꿈을 안고 퇴직금을 다 쏟아부어 외국 기관에서 자격증을 따고

1년간 실습을 거쳐 취업한 직종도 있었으나,

외국 근무의 어려움 때문에 또 이직을 선언했다.

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시절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업종 경기가 악화되어 일방적인 ‘사업 정리’ 통보를 받고 백수 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전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재취업에 성공했고,

지금은 첫 직장에 비해 훨씬 훌륭한 보상을 받으며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본업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충실히 키웠다면,

잠시 가라앉더라도 다시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는 나를 눈여겨보았던 주변인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실체 없는 소문만으로 멀리까지 이름이 닿기도 한다.


때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필요할 때도 있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할 때도 있다.


어쨌든 직장이란 것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다가,

인생을 흔들 기회를 던져주기도 하고,

투자 자금을 던져주기도 하는 쓸만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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