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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 1

1-5

by BO


Nick의 손을 마주 잡는 순간 느껴지는 그의 떨림,
놀란 듯 동그랗게 떠진 푸른 눈에 오롯이 나를 담아내는 그.


"진짜야?"
마치,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는,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그의 목소리.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Nick이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꿈이 아닐까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 손을 감싸 쥐었다.
마치 깨질 듯 소중한 것을 손에 쥔 사람처럼.


"나… 노력할게."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고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뭘 그렇게 다짐까지 해?"


"그냥… 너한테 잘하고 싶으니까."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기쁨과 설렘, 그리고 책임감까지 담긴 그 표정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자락을 휘감았지만, 우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서 있을 뿐.


멀리서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쩌면 바다가 우리를 축복해 주는 걸지도 모른다.

서툴지만 진심이 가득한 이 순간이, 오래 기억될 것만 같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더 깊이 맞잡으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제 나도 노력할게."


Nick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의 미소가, 가로등 불빛보다도 더 따뜻하게 번졌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맞잡고 긴 시간 서로를 바라봤다.

마치 시간이 멈추길 바라는 사람들 처럼.




그날 이후, 우리는 공식적인 연인이 되었다.


Nick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그 서투름에서 까지 느껴지는 진심에,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쓰며 최선을 다하려 하는 모습에,
그가 귀엽기도, 가끔은 마음이 간지럽혀지기도 하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어학원에서는 마치 아무 사이도 아닌 듯 거리를 두었지만,

시선 끝에 닿는 온기까지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무는 눈길, 어쩌다 살짝 엇갈리는 손끝,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미소까지.


결국, 가장 먼저 눈치챈 건 남동생, 형원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툭 던지듯 물었다.


“누나, 너 Nick이랑 사귀지?”


한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들켜버리다니.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형원의 눈빛은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형원의 시선을 피하며 컵을 내려놓았다.

"무슨 소리야?"

최대한 태연한 척했지만, 입가에 걸린 어색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형원은 팔짱을 낀 채 날 지켜보더니 피식 웃었다.

"봐, 맞잖아."

"아니라니까."

"그럼 내 눈엔 왜 그렇게 보일까?"

형원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요즘 누나 표정이 다르거든. 그리고 걔도."

"Nick이?"

"어. 되게 누나 신경쓰는 눈치였는데?"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형원이 Nick의 변화를 눈치챘다면,
혹시 어학원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린 건 아닐까?

나는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냥... 숨기려고 숨긴건 아닌데. 그냥 좀 조심하려고 했던거지."

"그럼, 내가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는 거네?"

형원이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눈치 빠른놈. 뭐 다른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알게되겠지 너처럼."

나는 조용히 어학원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을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참, 축하해 근데,"

형원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Nick 이랑 나, 셋이 밥 한 번 먹자. 혹시 알아? Nick이 내 형부가 될지?"

"뭐? 아서라 걔 20살이야."

"아 농담도 못하냐 누나, 그냥 궁금해서 그래."


형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능청스럽게 굴었지만, 이미 그의 눈빛은 잔뜩 기대를 숨길 수는 없었다.
사실, 형원은 처음부터 Nick을 꽤 마음에 들어했기에.


"그 녀석, 생각보다 괜찮더라. 완전 예의 바르고, 잘생겼고."


예전부터 형원은 Nick을 볼 때마다 평가하듯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서양 왕자님 느낌이네."라든가,

"이상하게 신사 같은 구석이 있어." 같은 말을 하면서.
처음에는 Nick이 어려서 별 기대도 안 했다가, 직접 몇 번 대화를 나누고 나서는 은근히 그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랄까.


그런 형원이 이제야 눈치챘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물끄러미 형원을 보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언제 시간 맞춰볼게."


"오, 그래? 좋아. 한 번 직접 만나봐야겠어."


형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싱글벙글했다.
그 표정이 괜히 불안하게 느껴졌다.


'설마 Nick 앞에서 쓸데없는 말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할 새도 없이, 형원은 벌써 휴대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의 들뜬 표정을 보며 나는 그의 핸드폰 액정 화면을 슬쩍 쳐다보니.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음식'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형원이답다. 괜히 Nick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해 주고 싶었던 걸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는 걸 보면, 참 배려심 많은 남동생이다.




형원이와 Nick은 빠르게 친해졌다.

처음엔 Nick이 형원이를 불편해 하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나의 가족이니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둘은 정말로 친구가 되었다.


"야, Nick! 불고기 먹으러 가자!"

형원이 신나게 외치면, 두말 할 것도 없이 환한 얼굴로 따라나서는 Nick.

"불고기? 당연하지! 가자가자!"

그는 이미 불고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형원이 추천해 주는 대로 이것저것 먹어보는 Nick의 모습은 꽤 흐뭇한 광경이었다.

"야, 닭볶음탕도 먹어봐. 완전 한국식 매운맛이야."

형원이 부추기듯 권하자, Nick은 반신반의하며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뱉는 감탄.

"이거… 진짜 맛있는데?"

"봐라! 이러다 나중에 누나랑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하겠다?"

형원이 장난스럽게 웃었고, Nick도 씩 웃으며 장단을 맞췄다.

"그럴까? 불고기랑 닭볶음탕만 있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Nick과 형원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잘 지냈다.

하지만, 그런 나날도 오래가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형원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응."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가야지."

당연히 같이 한국으로 들어갈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형원이는 아무래도 이 곳이 안맞았나보다.

공항에서 배웅하는 날, 형원은 짐을 정리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잘 지내고, 너무 외로워하지 마 누나. 아빠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그리고 Nick을 향해 능청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누나 잘 부탁해. 나중에 한국에서 보자!"

Nick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며 대답했다.

"네, 형님! 임무 완수하겠습니다!"

우리는 웃었지만, 떠나는 형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생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남동생이 떠나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늘 옆에서 장난을 치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익숙했던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싸우던 것도 그리워진 내가 이상한걸까.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Nick이었다.

"너무 우울해하지 마."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내 손을 잡아끌어 여기저기 데리고 나갔다.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가끔은 멀리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해 질 녘 조용한 거리를 걷다가 Nick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왜 그래?"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결심한 듯 내게 조용히 물었다.

"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Nick은 내 대답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쉴 뿐.

그러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같이 스위스로 가자."

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같이…?"

Nick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가자는 게 아니야. 같이 살자고. 결혼하자고."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뜨렸다.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Nick은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망설이는 기색 없이, 진지한 얼굴로.

"네가 어디에 있든 난 함께하고 싶어.
멀리 떨어지는 것도 싫고, 너 없이 사는 건… 더 싫어."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고,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드는 의문.

너 20살이잖아?

나는 조용히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머리속에서 들려오는 경고음과는 다르게, 나의 입은 응. 그러자. 라는 대답을 선뜻 내놓았는데, 아마도 어린날의 패기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듯하다. 결혼하자는 그의 프로포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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