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를 완주했다고, 풀을 얕보지 마라

하프 그냥 커피라면 풀은 T.O.P (넘사벽)

by 구르미
ChatGPT Image 2026년 2월 8일 오후 10_57_35.png


작년 늦은 가을,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그리고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딱 1년. 정해진 시간에만 운동이 가능했기에 하프 거리만큼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한 채 대회에 나갔다. 그럼에도 훈련했던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하며 완주했다.


그게 문제였다.


‘이 정도면 풀도 도전해 볼 만하겠는데?’


러너라면 한 번쯤 드는 생각이다.

하프를 넘기면, 마치 풀까지 반쯤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 착각은 얼마 전 32km 대회에서 처참히 부서졌다. 22km를 지나자 몸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다리는 돌처럼 굳었고, 통증은 점점 올라왔다. 페이스는 떨어졌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구간이 시작됐다.


어떻게든 완주는 했다. 목표였던 3시간 이내는 실패, 기록은 3시간 10분.

숫자보다 더 뼈아팠던 건 하나였다.


‘이대로는 풀은 안 된다.’


하프와 풀은 다른 종목이다


헬스장에서 육상 선수 출신 트레이너를 만났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40분씩 뛰는 걸로는 풀 어려워요. 몸이 ‘시간’에 적응해야 합니다.”


나는 월 200km는 뛰고 있었다. 적은 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하프는 근력으로 밀 수 있다. 10km를 꾸준히 뛰는 사람이라면, 마음먹으면 완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풀은 다르다. 에너지 시스템이 다르다.


존2에서는 지방을 태운다. 존3, 존4로 올라가면 글리코겐 사용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다. 그리고 그 글리코겐이 바닥나는 순간, 우리가 말하는 ‘벽(Hitting the wall)’이 온다. 22km 이후 내가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는 젖산이 아니었다. 문제는 고갈이었다. 이미 빼낼 만큼 빼낸 글리코겐, 남은 건 버티지 못하는 근육뿐이었다.


트레이너는 말했다.


“풀을 비슷한 페이스로 완주하고 싶으면 LSD 훈련을 늘리세요. 젖산역치는 기록 단축용이고, 완주는 시간 적응입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훈련을 바꾸기로 했다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해볼 수밖에 없었다.


1. 점심 러닝에 근력 추가


그동안은 스킵 5분 → 폼롤러 스트레칭 10분 → 40분 러닝(11km/h) → 코어 및 스트레칭 15분의 루틴으로 매일 훈련했었다. 저녁은 변동성이 많고, 아침은 일어나기 힘들었기에 짧은 점심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멀리 달리기 위한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루틴에 격일로 하체 근력을 넣기로 했다. 근력 날에는 러닝 15분, 나머지는 맨몸 중심 운동을 하기로 했다.


사이드 스쿼트, 원레그 스쿼트, 런지, 플랭크 등등 맨몸으로 하는 운동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하체를 위한 기구 운동도 있지만 기구가 아직은 어색하기도 하고, 괜히 무리했다가 부상이 올 수도 있기에 시작은 내게 익숙한 것부터. 결국 장거리에서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2. 주말 2~3시간 달리기


속도는 버린다. 시간을 채운다.


지금은 날이 너무 추워 못 나가지만 날이 조금만 풀리면 주말에는 꼭 2시간 이상 달려볼 생각이다. 속도는 중요치 않고 일단 시간을 채워서 몸이 시간에 익숙해지게 해야 할 것 같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새벽에 나가야 할 텐데 아직은 새벽이 너무 추워서.. 빨리 봄이 오길


3. 풀코스는 하반기


올해 초만 하더라도 초가을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에 나갔다가 결국 자괴감만 늘 것 같아서, 풀코스는 올 하반기 집 근처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거나 아니면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왕 나가는 거 고통스러운 완주보다 즐기는 완주를 하고 싶으니까.


목표보다 재미


사실 나는 풀을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훈련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고, 틀렸음을 인정하고, 다시 수정하는 이 과정이 재미있다.


하프 완주의 자신감은 나를 32km에서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나를 더 멀리 데려갈지도 모른다.


부디 나의 첫 풀코스는 억지 완주가 아니라,

웃으며 들어오는 골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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