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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현실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다르구나

by 구르미


인사 발표가 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 연휴가 찾아왔다. 추석 연휴에 맞춰 전임 관리자 분은 회사를 떠났고, 추석 연휴가 지나면 정말 나 혼자 이 부서를 이끌어야 한다란 부담감에 연휴 기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하면 '투자 전문가 다운' 관리자가 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벼락치기처럼 투자에 대해서 공부했다.


재무 관련 지식이 전무했기에 관련 자격증 문서도 보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매출, 원가, 매출 총이익, 영업 이익... 뭔 말이 이렇게 어렵지? 그러다가 눈에 띈 게 있었는데, 바로 투자 효과 산출이었다.


대표적인 투자 효과 산출 방법은 NPV와 IRR가 있는데, NPV는 Net Present Value(순현재가치)로 투자를 통한 이익과 내부 이익률을 비교하여 투자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고, IRR은 Internal Rate of Return(내부수익률)로 NPV를 얻기 위한 내부 이익률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생소하긴 한데, 투자의사결정을 내릴 때 자주 사용한다고 하는 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 이거야!'


왠지 이걸로 투자를 평가하자고 하면 뭔가 비 재무 전공이지만 관련 지식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꿈을 꿔봤다. 얼마 전 동네에 생긴다던 철도의 예비타당성 B.C. 값이 1점이 넘었다고 진행이 결정되었다고 하던데, 투자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자료를 만들었다.



모든 투자는 재무적 효과를 기준으로 투자 여부를 판단

효과 구분 : 원가 절감( ), 매출 증가 ( )

연도별 수입/지출 비교여 NPV와 IRR 계산 의무화

NPV가 0보다 크고, IRR이 CPI보다 높아야 함.



그리고 연휴가 끝난 후 부서 주간회의에서 이를 발표했다. 우리 부서 친구들은 다들 좋다 싫다 반응이 없다. 마치 '가요무대'에서 로제의 '아파트'를 부르는 느낌이다. 어쨌든 싫다는 의견이 없었기에 그 다음 주부터 투자 심의에 내가 준비한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은 이랬다.



ooo 장비 신규 도입

자동화된 신규 장비 도입을 통해 필요 인력수 x명/년 감소 가능

작업시간 xx% 단축되어 연간 생산량 xx% 증대 가능


연도별 지출(-) 0년 1년 2년 ... 10년

투자(장비구매) ## 0 ..

경비(장비관리) ## ## ..

연도별 이익(+) 0년 1년 2년 ... 10년

인건비(-xx명) ## 0 ..

매출(기여매출) ## ## ..


신규 장비 도입의 IRR이 #로, 사전에 정의된 내부 이익률 보다 높으므로 투자를 결정



그렇게 한 달 후, 난 깨달았다. 왜 그들이 영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는지..


일반적인 투자 가치 평가는 투자를 통한 이익을 대상으로 하고 결과가 확실히 나온다. 예를 들면, 주식 투자를 한다면 무조건 팔 때 금액이 나온다. 살 때 보다 올랐던 내렸던.

하지만 우리 부서에 요청되는 대부분의 투자는 ooo 장비 고장 수리, ooo 작업장 안전 위험 제거, ooo동 건설..이다. 고장 난 걸 고치는데 무슨 기여이익이 있고, 무슨 향후 지출이 있는가. 그냥 고장 났으니 고치는 것이지. 안전 규정 준수를 위해 난간을 설치하는데 이익이 왜 발생하는가, 과태료 맞기 싫으면 해야 하는 거지. 즉, 매출/이익을 산출할 수 없는 유지보수 투자가 정말 많았다. 경제성으로 접근하려던 계획은 처절하게 실패했고, 몇 개월 후 경제성 분석하는 항목은 투자 심의 서식에서 제외되었다.


2년 정도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실전을 참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경제성 보다도 투자의 사유를 더 먼저 본다. 이게 없으면 정말 회사가 멈춰야 하나? 그런 것을 기준으로 한다. 지금 투자를 심의하는 기준은 아래와 같다.



투자 결정의 3단계

1. 무엇이 문제인가? 그 문제가 얼마나 위험한가?

2.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3.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 있고 그게 가장 합리적인지 어떻게 검토했는가?



그렇게 이론과 실제는 달랐고, 사실 2년 전 했던 고민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숫자로 말할 수 있을까. 마치 모든 자연 현상을 공식으로 풀려고 하는 수학자 느낌이다. 런 걸 보면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것 같다. 난 어쩔 수 없는 공대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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