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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팀원을 뛰게 할 수 있을까?

by 구르미


옆 팀 태석 팀장이 오랜만에 나에게 커피 한잔 하자고 연락이 왔다. 태석 팀장은 과장 진급교육 때 만난 사람인데, 교육 인원 중 스탭 부서 사람들이 얼마 없어서 동질감 비슷한 유대감으로 친해졌고, 담타(담배타임) 때 자주 만나면서 서로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최근에 늦둥이가 생기면서 오래 살겠다며 치사하게 담배를 끊어서 예전보다 보는 횟수는 줄었지만 그래도 회사에 몇 안 되는 마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오랜만의 부름에 바로 나갔다.


나: "아이고, 팀장님, 어쩐 일로 절 다 부르셨나요?"

태석: "아이고, 팀장님이 되시더니 얼굴이 더 훤해지셨군요."

나: "얼른 본론을 얘기하시지요?"

태석: "르미야, 너 우리 팀에 순식이 알지?"

나: "아, 알지, 우리 회사 금수저. 아빠가 외교관이라 남미에서 초, 중, 고 나오고 미국에서 대학 나온 애. 걔 잘하지 않아? 스펙상 잘할 수밖에 없던데?"

태석: "일은 잘해. 근데 일을 안 해 ㅋㅋ 정확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해. 너도 알잖아, 우리 팀에 정기 실적 보고가 많은 거. 그게 손이 많이 가고 또 중요한 숫자잖아. 근데 순식이는 자긴 그거 안 하겠데. 자기는 기획서 쓰는 것만 하겠데. 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 "그럼 그 일만 시켜~"

태석: "그럼 다른 애들이 가만 안 있지. 너도 알면서.."

나: "그건 그래, 근데 내 경험상, 그런 애는 그냥 포기하거나 다른데 보내는 게 나아. 축구 혼자서 하는 거 아니잖아 ㅋㅋ"

태석: "야, 니 일 아니라고 막말하냐? 니 밑에 얘면 그렇게 할래?"


맞다. 내 밑에 직원이면 그렇게 못한다.


멍부, 똑게


15년 전인가? 당시 내 팀장이 리더십 교육을 듣고 오더니 멍부, 똑부, 멍게, 똑게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더니 누구랑 누구의 궁합이 좋다느니 하며 다 같이 무슨 유형인지 테스트를 해보자고 귀찮게 했었다. 마치 요즘 한창 유행하는 (이제 좀 지나긴 했지만) MBTI의 2000년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출처 : 고용노동부 자료실 (놀랍게도 1933년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럼 순식이는 어떤 유형일까? 똑똑하지만 주어진 일을 골라서 하니 '똑게'라고 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모르는 거니 '멍게'라고도 할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열심히 하니 '똑부'일 수도 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4가지 유형에는 안 들어간다.


그리고 나도 큰 골칫덩이인 부하직원, 희영이 있다. 모든 의욕이 사라진 친구다. 이 친구는 시키는 일을 어찌어찌 하지만, 의욕이 없어서 자기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게 하나쯤 있을 법 한데 그냥 웃으며 다니고 원하는 것도 없다. 이 친구는 '멍게' 일까? 정해진 일을 부지런히 하긴 하니까 '멍부' 일까? 아님 고도의 똑똑함으로 일을 피하고 있는 '똑게' 일까? 이 친구도 4가지 유형에는 맞추기 어렵다.


그럼 순식이와 희영이는 무슨 유형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난 순식이와 같은 부류를 (아쉬울 게 없는) "금수저" 유형,

희영이와 같은 부류를 (의욕이 없는) "풍선인형" 유형이라고 하고 싶다.


순식이나, 희영이가 아니라도 요즘은 이런 부류 친구들이 참 많다. 두 부류 모두 문제는, 회사에 욕심이 없다. 회사에서 욕심은 매우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로, 이 욕심을 통해서 회사는 급여 보다 더 큰 성과를 얻는다. 진급하고 싶은 욕심, 인정받고 싶은 욕심, 높은 자리로 가고 싶은 욕심.. 이런 충성 직원 덕분에 회사는 큰 이득을 얻는다.


그런데 이런 뉴타입의 등장으로 팀장들은 부하직원을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일단, 스스로 뭘 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다 챙겨야 한다는 것이고, 협업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 참으로 기운 빠진다. 의견을 물어도 답이 없다. 마치 나 혼자 커다란 수레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하면 되겠니?


이런 친구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달리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몇 가지 시도를 해봤었다.


1. 채찍 휘두르기


이젠 내가 예전에 회사를 처음 다닐 때 전설처럼 들려왔던 팀장이 팀원을 때린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 되었다. 팀장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는 평가다. 그래서 희영님에게 안 좋은 평가를 줬다. 내 입장에서는 의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의외로 나타났다.


희영: "팀장님, 저 왜 평가를 낮게 주셨어요?"

나: "전 희영님이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는 더 적극적으로 해봅시다."

희영: "전 팀장님이 시키시는 일 빠지지 않고 기간 내에 다 했는데요?"

나: "그 일만 하시면 안 되고, 제안서도 많이 쓰시고, 시키지 않은 일도 찾아서 하셔야 합니다."

희영: "전 그렇게 지시받지 않았는데요?"

나: "제가 분명히 연초에 ARS로 평가한다고 했고, Special 한 아이템을 발굴해서 연말에 결과를 내라고 했는데, 희영님은 하지 않으셨네요."

희영: "그럼 중간에 지시를 하셨어야죠."

나: "6월에 중간 면담 때 얘기 했었는데, 내년에는 더 자주 해야겠네요. 전 희영님을 벌주려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방향으로 같이 가고 싶어서입니다. 희영님은 언제까지 회사 다니고 싶으세요?"

희영: "전, 결혼하면 회사 그만둘 거예요. 저 PT가 있어서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의욕 없는 희영님이 저렇게 의욕적으로 말하는 걸 처음 봤다. 구조화 하고 싶진 않았지만 SNL에서 보던 MZ가 생각났다. 미리 공지하거나 피드백하지 않았었다면 인사팀 면담도 불사했을 것 같다.

차라리 빨리 결혼하고 퇴사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금수저'유형은 또 다르다.

태석 팀장왈, "내가 루틴 한 일도 잘하라고 평가를 낮게 줬는데, 걘 아예 신경도 안 쓰더라."

그렇다, 금수저는 굳이 평가를 잘 받고 월급이 올라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히 풍족하니까.

그래서 '금수저' 유형에게도 채찍은 실패했다.


2. 책임 부여하기


태석 팀장에게 이렇게 제안했었다. 순식 님에게 프로젝트를 하나 맡겨보면 어떨지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하니, 프로젝트를 맡기면 열심히 하고, 또 성과도 좋게 나올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태석 팀장은 한숨을 푹 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나: "태석 팀장,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태석: "GS(Gold Spoon)가 일을 그냥 짬 시켰어."

나: "뭐? 왜? 잘할 것 같더니?"

태석: "하다가 결과가 잘 안 나오니까 그냥 나 몰라라 하고 프로젝트에 참석 안 했데."

나: "헐, 그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프로젝트가 좋게만 갈 순 없는 건데.."

태석: "그러게, 그래서 내가 그거 마무리하느라고 죽겠다."

나: "역시 생각 같지 않다. 팀장이 제일 노비인 것 같지 않냐?"


역시나 내키지 않으면 그냥 쿨하게 그만두는 금수저답다.

물론 모든 금수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엄청난 금수저임에도 심각하게 Work-Holic인 사람도 있다. 또 금수저인데도 극도로 예의가 바르고 착실한 사람도 있다. 결국 진리의 케바케 이긴 한데, 부모의 교육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공감할 수밖에 없다.


3. 업무를 분리하고 평가를 예고하기


그럼 업무를 아예 분리해서 시키면 어떨까? 예전에 지훈 팀장이 했던 방법을 소개해보겠다.


A라는 직원은 의욕이 없고 늦게까지 일하기 싫어하고 Work and Life balance를 중요하게 여기니 매일 정해진 양을 검토하면 되는 '문서 검토' 업무를 부여하고, 대신 평가는 기본 평가를 주기로 약속했다.

B라는 직원은 의욕이 많고 일을 찾아서 하는 성격이라 높은 평가를 약속하고 일을 몰아주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다르기 때문에 위 방법이 무조건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지만,


A 직원은 일 년 후 다른 팀으로 가겠다며 떠났고, 떠나면서 했던 말은 기존 팀에서 자기 발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일 년 간 칼퇴율 100% 였지만, 일 년 간 반복된 일만 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그럼 비난은 하지 말지..

B 직원은 안타깝게도 퍼포먼스가 예전처럼 나오지 않았다. 평가를 보장받은 이상 일을 더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졌던 것이다. 마치 수시 합격한 친구가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역시 100% 의욕이 없거나, 100% 열심히만 하는 사람은 없고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 같았다.


저성과자 vs 고성과자


여러 시도를 해보거나 들어봤지만, 문제가 있는 친구를 잘하게 하는 건 참 어렵다. 문제를 찾아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성공한다면 조직관리가 뛰어난 관리자라고 칭찬을 들을 순 있겠지만, 뛰어난 성과를 내는 관리자라고 하긴 어렵다.


그래서 고민이 되는 게, 과연 저 성과자를 중간 성과자로 만들 것인가, 고 성과자를 초고 성과자로 만들 것인가다. 내가 조직원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무한대로 관찰하고 방법을 찾을 순 없다. 예전에 사장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저 성과자를 키워도 보고, 고 성과자를 키워도 봤는데, 내 에너지 100을 쓴다고 했을 때 저 성과자는 50에서 80이 되는데, 고 성과자는 100이 300이 되고 500이 되고 1,000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길 추천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회사는 성과를 내야 하며, 조직원의 성과는 리더의 성과가 된다. 여러분의 성과를 위해 잘하는 사람을 발굴하고, 그 사람이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라. 그게 팀장이 할 일이다.


매우 냉혹하지만, 매우 실리적인 말이다. 결국 난 너무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했다.

누구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 봤자 도움 될 게 없다. 우리는 회사에서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순식이나 희영이를 어떻게 하면 사람 구실하게 할까 고민하는 시간에 일 잘하는 내 후계자를 더 키워봐야겠다.


냉혹한 현실에 타협한 것 같아 조금 서글프지만, 어쩌겠나. 나도 먹고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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