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유효기간
언제부터인가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손절했다"
"손절각이다"
"손절당했다"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원래 있던 말인가?' 궁금해져서 사전을 찾아봤다.
'손절매'라는 주식용어에서 유래된 노력 해도 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일 경우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라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손절이라는 단어가 매몰차 보이고 단칼에 잘라냈다는 표현 같아서 관계를 정리했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생각했던 내게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위'라는 부분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러한 이유로 15년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누군가를 '손절' 한 경험이 있다.
생각도 비슷하고 참하기만 했던 친구였다.
우리는 대학 동기였지만 졸업 후 원래 친했던 친구와 함께 하며 친해지게 된 사이였다.
그렇게 20대 초중반부터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고 각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며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면서 가끔 보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였다.
언제부터인지 그 친구는 타지에 홀로 떨어져 육아와 결혼생활을 해 오며 신세한탄 비슷한 말들을 많이 하기 시작했고 네거티브적인 마인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가끔 만날 때나 친구들끼리 자주 카톡을 주고받을 때도 대화의 방식은 그런 식이었다.
'홀로 떨어져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며 무례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 중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끊으며
"아 됐고~"라던지,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거나 응원이 아닌 "아 좋겠다 그런데 나는 별로던데.."라는 식의 화법으로 점점 더 무례해져 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화도 나고 기분이 나빴지만 무례함을 지적하며 서로 간의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 기분 나쁘고 말지..'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통화를 하다가 결국 본인의 이익을 위해 나에게 부탁을 하는 이야기면서 마치 나를 위해서 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고 나서 관계의 지속을 위해 남을 배려하고 나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일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기분 나쁜 걸 참으면서 까지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해주려 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그 이해와 배려가 결국엔 누군가의 이기심에 짓밟힌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화도 났고 무례함을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에 장문의 글도 썼다. 이제까지 참아주고 이해해 줬던 무례함을 다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카톡이 울렸다. 평소와는 다른 태도로 끊었던 전화 때문이었는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여전히 메시지에는 나를 위해서라는 말이 등장했다. 답장을 하지 않아서일까, 또 다른 메시지가 왔고 나는 안읽씹 상태로 관계를 정리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무례함을 견뎌준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친구로 인해 더 이상 내 감정과 시간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차단시켰고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15년의 시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런 식으로 막을 내렸다는 것은 여러 감정을 느끼게 했다. 화도 났고 단 한 번이라도 그 친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눴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까?라는 자책도 들었다.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무뎌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통쾌한 기분도 아니고 시원섭섭한 마음도 아니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으며 화와 슬픔이 동시에 공존하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이랄까?
한 마디로, 느껴보지 못했던 말도 안 되는 감정이다.
친밀했던 누군가를 '손절' 한다는 건 절대 후련할 수도 괜찮을 수 도 없다. 처음엔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쌍방의 상처다. 그저 더 상처 나고 아프고 싶지 않아 선택한 방법일 뿐이다.
관계를 끊어 냈다기보다 관계의 유효기간이 다 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아깝다고 먹거나 괜찮다고 여기면 탈이 나는 것처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미 삐걱거리고 상해버린 관계를 붙들고 있어 봤자 나는 탈이 나고 그로 인해 지칠 뿐이다.
오래도록 아껴두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을 버리기 아까워 손에 쥐고 있어 봤자 이미 지나버린 유효기간은 되돌릴 수 없다.
손절은 관계를 끊어버리는 잔혹함과 냉철함이 아니다.
더 이상 미련하게 붙잡고 있지 않겠다는 나를 위한 선택이다.
여전히 가끔은 그 친구가 떠오르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 조금만 다르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화를 내고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며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 말이다.
'손절'은 그저 때가 되어 빛이 바래 의미가 없어진 관계를 손에서 놓고 흘려보내주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