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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

결혼은 선택

by 샤넬발망 Feb 17. 2025

비혼주의


삼성역 인근에서 저 멀러 인천 인하대 부근까지 꽤 먼 거리다. 금액은 3.6천원...

출발지에 도착했더니 초록색으로 된 페라리 스포츠카,

187cm의 큰 키에 덩치 큰 내가 운전석에 앉고 핸들을 돌려보니 무릎에 걸릴 만큼 매우 좁았다.

마침 내가 백 팩을 들고 있었는데 그걸 본 고객께서는 자리 무릎에 가방을 놓으면 된다고 하여 가방을 건네 드렸다.

사실 이런 경우는 잘 없다. 대리기사의 백 팩을 뒷자리에 두거나 아님 뒷자리가 좁으면 트렁크에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0대 중반의 여성 고객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밤새 술자리를 가졌으며 인근 호텔에서 같이 자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대리를 불렀다고 한다. 보통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하는 고객의 경우 잠을 자는 것이 대부분이다. 술기운이 올라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고객은 나의 외모가 좀 무서웠(?)는지 잠을 청하기 보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다. ‘내가 외모는 그래도 안전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다.


“고객님, 혹시 책 좋아하세요? 제 가방 안에 책 읽는데 한번 보실래요” “네, 책이요?” 이러면서 내가 가방을 열어 책을 줬더니 한참을 웃으면서,

“책 가지고 다니는 대리기사님은 또 처음 보네요. 업무상 술자리가 많아 대리 많이 부르는데 책 갖고 대리기사 하는 분은 처음이네요” 

이러면서 책을 뒤척이며 책 구경을 하다. “짧게 짧게 이어진 글들로 이어진 책이네요. 보기 부담을 없겠네요. 근데 제가 책을 안좋아해요.”


그래도 상관 없었다. 이렇게 이어진 대화는 도착지까지 40분 동안 이어졌다.

왜 투잡으로 대리기사를 하느냐? 대리기사는 얼마 버냐? 대리하면서 만난 고객들은 얘기를 잘해주느냐? 술 취한 사람이 많지 않느냐? 등등 내가 그 고객에게 질문하는 것 보다 그 고객에 나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았다. 책을 쓴다는 말에 “그래서 책을 좋아하시는 군요? 혹시, 손님들과 나눈 대화 중에 제일 기억나는 것 하나 얘기 해 주세요. 그럼 저도 에피소드 하나 말씀 드릴게요” 그녀는 상당히 호기심을 갖고 나를 쳐다봤다. 뭘 얘기할까 고민하다. “혹시, 결혼 하셨어요?” “왜요? 결혼 안했을 것 같나요?. 저 비혼주의에요” 라는 얘기를 듣고. 어떤 얘기를 해 주면 흥미를 가질까 고민을 하다. 드뎌 하나를 선택했다. 


왜 그렇지 않는가? 대리기사는 자기의 전화번호 알지 못하며, 어차피 오늘 한번 보고 말 사람이다. 대리기사만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그래서 술도 좀 취했겠다. 거침없이 거짓말 하지 않고 대리기사에 얘기를 건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 40대 중반 불륜남의 고민이 있었다. 빠듯한 월급쟁이 입장에서 두집 살림을 하려고 하니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그러나 상대 불륜녀는 바라는 것이 많고, 헤어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과연 이게 사랑일까? 이런 고민에 빠진 남자의 얘기를 해 드렸다. 


“기사님, 제가 비혼주의를 결정한 이유가 저런 것 때문이에요” 그녀의 첫 대답이었다. 순간, 내가 대한민국 모든 남자를 대표해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였다. 출산율 0.7인 나라에서 비혼주의 여성에게 비혼을 확신하게 만들었다니 무릎꿇고 사죄할 일이였다.


“고객님 그게 아니라~~, 결혼은 좋은건데 저런 건 지극히 일부 사례잖아요. 혹시 결혼 생각한 남자 없었어요? 있었잖아요. 그때의 행복도 한번 생각해 보심이..”

사실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내가 뭐가 된다고 고객을 가르 칠려고 들다니..그냥 비혼주의라고 하면 ‘네~~, 그럴수 있죠, 요즘 각자의 판단이 중요하잖아요’ 이 한마디면 되었을 터, 괜히 나섰나 싶었다.


황급히 주제를 돌려 그럼 연애는 하냐고 물었다. “연애는 하고 싶고요, 연애는 계속 쉬지 않고 해요” “그런데, 그 중에서 결혼하자고 하는 남자가 없던가요”

“애당초 비혼을 전제로 연애만 하는 남자만 만나요.하하” 


모름지기 사람의 감정이란게 아주 간사해서 처음에는 연애만 하겠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끝까지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사귀다 보면 결혼하고 싶고 결혼하다 보면 2세를 출산하고 싶고 그렇게 평생을 같이 늙어가길 원할 텐데 말이다.


전자 담배를 꺼내며 차에서 한 대 펴도 되냐고 그녀가 묻는다. 40분을 꾹 참았던 모양인데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되고 나니 내가 어느새 편해졌나 보다.

목적지에 다가올 때쯤 그녀는 속마음을 꺼낸다. “저도 결혼하고 싶죠. 그런데, 주변에 애 키우면서 고생하는거 저는 못할거 같고, 어느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제 인생을 버리기 싫어요. 죽을때까지 외로울 수도 있는데, 그래도 지금 이렇게 혼자 즐기면서 연애만 하고 살고 싶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삶 자체만을 생각했고 그 누구에도 방훼받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들 모두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어 행복하다고 하지만, 가끔 비혼주의를 택한 고객님의 삶을 조금을 부러워 할때도 있지 않을까 싶다.


거스름돈이 없었다. 계좌이체를 해 달라고 하니, 유쾌하게 웃으며 “기사님, 대리기사님들은 전화번호도 모르고 한번 만나면 끝이라면서요~~, 전 제 계좌 남기고 싶지 않은데요. 호호. 나머지 거스름돈 5천원은 서울 복귀하시며 커피한잔 하세요.”


그녀의 말이 정답, 이런걸 일석이죠, 난 팁을 얻어 좋고 그녀는 계좌정보와 이름을 남기지 않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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