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는 없었지만, 불쾌함은 있었다.
웃자고 한 농담에
상대가 정색한다면?
그럼 그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는 걸,
빠르게 깨달아야 한다.
예능프로그램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무한도전 종영 이후 마음에 드는 예능프로그램을 찾지 못해
유유자적 생활을 한지 어언 7년 차.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짤을 보고,
우연히 '오래된 만남 추구'를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유명했던 배우들과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들이
나오는 걸 보고 보기 시작했는데,
연애 프로그램은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어느덧 본방 사수를 외치는 상황이 될 정도로
방송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파트너가 변경되고 호감이 엇갈리는 순간들을 보면서
그 상황 속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조리기도
평소 좋아했던 분들이 서로 호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설레기도 했다.
'이 재밌는 걸 나만 볼 수 없지!'
나는 남편에게 내가 봤던 내용들을
생생하게 설명하며 남편을 꼬드겼다.
부부가 같이 프로그램에 푹 빠져들던 중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는데,
바로 지상렬 씨와 우희진 씨의 데이트 장면이었다.
우희진에 프로그램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던 지상렬은
결국 우희진과 데이트를 하며
서로 호칭도 정하고 알콩달콩한 모습이
방송에 담겼다.
"어머! 어머!"를 외치며 방송에 몰입하고 있던 때,
식사 데이트 막바지에 볶음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우희진이 "버섯이다!"라고 말한 순간
찰나를 놓치지 않은 지상렬의 회심의 개그.
"세상에서 제일 야한 식물이 뭔지 아세요?"
이어진 우희진의 대답 "아니요?"
그에 지상렬이 대답했다 "버섯(벗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급격히 우희진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수위가 높은 개그 탓에 당황하며 혼란스러워했다.
버섯 얘기가 나와서 나온 개그였지만,
자막이 없었다면 나도 응? 했을 것 같다.
'벗어!'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상황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탓인지,
반응이 썰렁하다고 생각한 탓인지
이어서 지상렬은 지속해서 비슷한 류의 개그를 했다.
우희진이 돌려 돌려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해당 상황을 두고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지상렬은 전혀 인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저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로 그녀를 웃게 하리라!'
이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 같았다.
그렇게 데이트가 마무리되고
숙소로 돌아온 지상렬과 우희진.
지상렬은 데이트 중 그녀를 계속해서 웃게 했다며
남자 동료들에게 자랑했고,
우희진은 데이트 막바지에 자신이 너무 혼란스러웠다며
상황을 이야기했다.
관련 상황을 두고 이영자와 김숙은 너무 웃긴다며
개그맨들 사이에선 일상적인 일이라며 이야기했으나,
장서희는 우희진을 이해하며 너무 놀랐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출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상렬은 우희진이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꼈음을 인지했지만,
그 상황이 왜 불편한지 이해하지는 못했고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구본승에게 물어봤다.
상황을 들은 구본승은 문제점을 바로 캐치하고
적절한 예시로 지상렬을 이해시켜 줬다.
프로그램 초, 첫 데이트 상대를 정하기 위해
남자 출연자들이 소지품을 제출했는데,
배우 황동주가 베개를 제출했다.
'편안하게 쉬셔라.'라는 의미로 제출했던 베개.
이유를 들은 남자들은 센스 있다며 감탄했지만,
뜬금없이 소지품으로 제출된 베개를 보고 여자들은
첫 만남부터 잠자리를 연상하며 굉장히 불쾌해했었다.
구본승 씨는 그 상황을 두고 다르게
해석이 오고 갔던 것을 예시로 얘기해 주었고,
지상렬 씨는 그제야 자신이 별생각 없이 한 개그로
상대의 기분이 상했음을,
자신이 실수했음을 이해했다.
별생각 없이 던진 농담,
분명 성적인 걸 염두에 두고 했던 농담은 아니었으나
상대방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참의 고민 끝에
우희진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황동주의 베개와 지상렬을 버섯.
두 상황 모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상렬의 경우 애초에 질문 자체에
'가장 야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갔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더 오해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직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떨까?
친분이 많이 쌓이지 않은 동료 간 관계에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 정도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했을 때를 가정해 보자.
만약 상대방이 해당 개그를 듣고
이영자와 김숙처럼 '너무 웃기다~!'라고 반응했다면 Ok!
좋은 농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희진처럼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면,
그 상황은 성희롱으로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희롱의 판단은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의 기분이
가장 최우선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직장 내 성희롱 사건들의 많은 가해자들이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피해자로서는 변명처럼 들리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지상렬처럼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냥 웃자고 한 농담이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혹, 내가 별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에
상대방이 언짢게 생각하거나
불편한 기색이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하고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