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은 나부터 지키셔야죠!
줄을 기다리는 건 당연한 예의일까?
아니면 선택적인 배려인 걸까?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목요 장터'라고 불리는 작은 시장이 섰다.
아파트 사이의 도로에 상인들이 찾아와
여러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장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
대형 마트보다 저렴하고 신선한 품질의 식재료를 살 수 있어.
엄마는 늘 이 목요 장터를 이용하곤 했다.
나는 늘 익숙한 듯 새로운 시장에서
간식도 얻어먹을 생각으로 엄마를 졸라 따라다녔다
어릴 적 좋았던 추억도 있고
신선한 청과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서
여전히 나는 시장을 좋아한다.
그러다 얼마 전,
시장에 방문했다가 새로 오픈한 청과 상점이
엄청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어찌나 사람이 몰렸던지 옆 건물까지 대기줄이 있을 정도였는데,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일주일치 먹을 식재료를
담다 보니 어느새 장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웠다.
30분이 넘도록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대기를 한 끝에
겨우 내 차례가 되어 계산을 하고 있었다.
장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운 탓에 청과가 담긴 비닐만 해도
4~5 봉지가 나오는 걸 보고 어딘가 쑥스러웠다.
내 뒤로는 여전히 긴 줄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긴 줄 맞은편, 내 바로 옆쪽으로 할머니 한분이 붙어 섰다.
'구경하시는 건가 보다.'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기 생각하려 했는데,
이내 할머니의 한마디가 내 신경을 긁었다.
"어휴, 이렇게 많이 기다리는데 적당히 좀 사야지."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기다려서
내가 필요한 물건을 샀을 뿐인데,
마치 내가 남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언짢았다.
가뜩이나 당황스럽고 언짢은 기분을 느끼는 중인데,
말을 끝낸 그 할머니의 다음 행동이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작은 채반 소쿠리에 담긴 야채를 계산대 쪽으로 쓰윽 미는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탓에 일주일치 장을 봐야 했기에
계산해야 할 물건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고,
내심 속으로 조금 눈치가 보여 더 못 담기도 했다.
정당하게 줄 서서 기다리는 뒷사람이 얘기했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도 같은데,
남들 다 기다리는 거 뻔히 보고
그걸 입으로 얘기하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새치기를 하려고 하는 태도가
연령을 불구하고 괘씸하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한마디 못하고 집에 와서 분하다며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을 텐데,
어쩐지 그날만큼은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끓어올랐다.
아무 말 없이 새치기를 하려고 했다면
그냥 '줄 서있는 걸 모르셨나 보다.' 했을 텐데,
본인 입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도
당당히 새치기를 하려는 태도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계산이 끝나갈 무렵 물건을 받아 들고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데!"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처음에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이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계산하시려면 줄 서셔야 해요."라며
할머니의 새치기를 저지하는 걸 들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비록 잘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부당한 상황에서 내 권리를 되찾은 것만 같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나도 할머니도 잘한 사람은 없다.
물건을 얼마나 구매할지는 내 정당한 권리였으나,
할머니에 대한 태도는 잘했다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할머니의 잘못과 나의 잘못에 대해 엄밀히
구분 짓자면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 에티켓과 매너는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어,
일상에서 의미에 대한 정확한 구분 없이 틀린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에티켓은 쉽게 표현해 '공공질서, 규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행위',
'횡단보도가 떨어져 있어 무단횡단을 하는 행위' 이런 부분들이
에티켓에 해당한다.
반면, 매너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데이트 중 남성이 여성을 배려해 의자를 빼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행위를 두고 우리는 '매너가 좋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매너는 '매너가 있다', '매너가 좋다'로 표현할 수 있지만,
에티켓은 '에티켓이 있다', '에티켓이 좋다'로 표현할 수 없다.
다시 앞선 시장 사례로 돌아가보자면,
할머니는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고 매너도 없었던 반면,
나는 매너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에티켓은 내 하루를 정돈하고,
매너는 누군가의 기분을 지킨다.
결국 우리가 줄을 서는 이유는
내 차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기 위해서다.